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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서른세번 조종 울리며 하늘에 안겼다
"너무 많은 사랑 받았다" 안구기증
 
강현석/최인수   기사입력  2009/02/17 [10:44]
명동성당의 종이 33번 울렸을 때, 온 국민은 그의 선종(善終)앞에 조용히 흐느꼈다. 평소 사랑과 화해를 강조했던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타인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16일 향년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저녁 6시 12분 김 추기경이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서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선종했다고 밝혔다.
 
김 추기경의 시신은 이날 밤 강남성모병원에서 명동성당으로 옮겨 안치됐으며, 교구측은 '성직자를 위한 연도(위령기도)'을 열고 곧이어 위령미사를 드렸다. 생전 모습보다는 약간 수척해보이기는 했지만 김 추기경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감돌았다.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명동성당에는 저녁 6시 15분쯤 이를 애도하는 33번의 종이 울렸으며, 명동성당에만 가톨릭교인 1500여 명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김 추기경의 장례는 닷새 일정으로 열리며 매일 명동성당에서 추모미사가 진행되고 오는 20일 저녁 10시에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관으로 장례식이 열리게 된다.
 
또 오는 22일에는 서울대교구 주관으로 서울 명동과 장지인 경기도 용인의 서울대교구 묘지에서 동시에 추도미사가 있을 예정이다.
 
빛을 잃은 자들에게 빛을 돌려주다
 
김 추기경은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두 명의 생명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안겨줬다.

 

천구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문화홍보국장은 이날 저녁 열린 기자회견에서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서 약속한 대로 김 추기경께서 두 사람에게 새로운 빛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교구측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사망직후인 저녁 7시 20분부터 약 5분 동안 안구적출수술을 받았으며, 적출된 안구는 두 명에게 기증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은 임종 직전까지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주변 사랑들에게 '사랑'을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문화홍보국장은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께서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김 추기경은 이날 하루동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별도의 유언을 남기진 않았지만, 사망 10분 전까지도 의식이 또렷했고 '고통스럽지 않냐'는 주변인들의 걱정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종하기 2-3일 전부터는 병실을 찾아오는 주변인들에게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살면서 늘 강조한대로 '사랑하라'는 말을 무척 많이하셨다고 교구측은 밝혔다.

 

그의 ‘낮은 삶’을 되돌아보다
 
김 추기경은 1922년 음력 윤5월 8일(양력 7월 2일) 대구 남산동 독실한 구교우 집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김 추기경은 학교에서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가 교장실에 불려가 크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해방 이후인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으며, 1969년 4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47세의 젊은 나이에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김 추기경은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평소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기본권과 사회정의가 지켜져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8년 동일방직노조 사건 등 굵직한 사회현안마다 직접 나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70-80년대를 지나는 동안 김 추기경은 우리사회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자 잣대였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때도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그런 믿음 하나로 막았다.
 
각계 각층의 조문 잇따라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명동성당에는 각계 각층의 조문행렬이 잇따랐다.
 
한승수 국무총리 내외는 이날 곧바로 명동성당을 찾아, 김 추기경의 위령기도에 참석하는 등 밤 늦은 시각까지 성당을 지켰다.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도 밤 10시 30분쯤 명동성당을 찾아 위령미사에 참석했다. 유 장관은 “어른이 돌아가셔서 슬프고 안타깝기도 하다”며 “그 큰 어른의 마음을 받아서 더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짤막한 심경을 밝혔다.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는 “김 추기경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았다"면서 "무엇보다 개신교와 함께 교회일치운동을 함께 해 온 분이어서 더욱 안타깝다"고 밝혔다.
 
불교계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승려의 애도문을 통해 "이웃의 고통을 대신해 살아오신 평생의 지표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란다“며 ”모든 천주교인들의 슬픔과 함께하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날 명동성당을 찾은 가톨릭 교인 이호분(67)씨는 “6시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종이 33번 울리더라”며 “신부님도 목이 메여하셨고 모든 신자들이 큰 슬픔에 잠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위령미사에 참석하려고 온 세례명 김앨리자벳(41)씨는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안타깝고 섭섭했다”면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은총 가득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규철(45)씨는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모두가 슬픈 일”이라며 “우리나라의 큰 힘이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선종하시게 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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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17 [10: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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