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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여장 성곽, 면장 성곽
작성자
조상순 연구관
게재일
2017-08-18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조회수
3442

 


  한양도성이나 수원화성과 같은 성곽을 보면, 들쭉날쭉 요철(凹凸)로 된 나지막한 담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이것을 ‘여장(女墻)’이라 한다. 장(墻)은 ‘담’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해되는데, 왜 ‘여(女)’를 붙여 ‘여장’이라고 했을까.


  중국 명나라 때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와 중국 후한(後漢, 서기 25~220년) 말기에 만들어진 사전인 『석명(釋名)』에 그 답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성 위에 있는 담을 비예(睥睨)라 하며 가운데 빈 공간이 있어 비상(非常)한 것을 살펴보게 하는데, 아래의 높은 성에 비하여 높이가 작아, 마치 키가 큰 남자와 키가 작은 여자와 같아서 이를 여장이라고도 일컫는다.   (若女子之於丈夫也)’고 되어 있다.


  여장은 성곽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 자체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면, 여장은 방어와 공격 두 가지를 담당한다. 임진왜란 이후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은 『서애집(西厓集)』에서, 이 여장(女墻)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그는, ‘원래 여장은 높이가 있어야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피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여장은 몇 자 되지 않아, 성을 지키는 사람이 몸을 숙이고 허리를 굽혀 쥐처럼 지나감에도, 적의 탄환에 맞을 수 있으니, 옳지 못하다’고 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되어, 적의 침입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란 이후 지어진 수원 화성은 다른 성곽에 비하여 여장의 높이가 높다.


  한편 한양도성의 남문인 숭례문을 보면 요철이 없이 평평한 담이 문루를 둘러싸고 있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조선시대 일부 문헌에서는 이를 평평한 면과 같다 하여 ‘면장(面墻)’이라 하였다. 그런데 높이가 꽤 높다. 1층에 서면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목조건물인 문루가 불화살과 같은 공격에 손상되는 것을 막고, 내부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성곽에서 가장 방어에 취약한 곳인 출입문을 보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원 화성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성곽에는 다양한 형태의 여장이 존재하는데, 여장의 형태와 총안(銃眼; 총포를 쏠 수 있도록 뚫은 구멍)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바로 성곽이 위치한 지형과 기후에 맞게,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돌과 벽돌 등을 사용함에 따라, 축조기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집중폭우로 큰 수해가 났고, 이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위험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때에, 갑자기 닥쳐온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과 위기에 대응하는 준비는 평상시에 해두어야 한다.


설명사진


<수원 화성의 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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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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