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5-26 05:42
[자연] 원추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770  


세상 모든 원추리가 다 한국에서 나온 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 널리 퍼지고 화훼(花卉)로 재배하는 원추리 종류의 상당수는

한국이 원산지인 것을 가져다가 교배 등을 통해서 개량한 것들이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한국(만)을 원산지로 표시한 것이 네 개인데,

그중에 두 개의 학명에는 일본사람 이름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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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의 영어이름은 daylily-틀렸다고 빨간 줄이 그어지지만 day와 lily를 떼지 않고 붙여 써야 옳다, 사전 나빠!-,

학명은 Hemerocallis, 희랍어로 날(日)을 뜻하는 hemera(ἡμέρα)와 아름답다는 뜻의 kalos(καλός).

대충 감이 잡히는지? 꽃의 아름다움이 딱 하루 동안만이라!

“아닌데, 오래 가던데...”라고 저항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그러니까...

해 뜰 때 피었다가 해질 때 시드는 것 맞다, 꽃 하나는.

꽃대에 워낙 여러 송이가 달려 있고 꽃대가 뭉텅이로 솟아있으니까

꽃 하나쯤 지워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낳고 죽고 피고 지는 흐름 속에서 눈대중으로 잡은 절대량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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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시편 기자는 인생을 두고 그랬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 (90:5, 6)

인생은...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90:10)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榮華)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사 40:6, 벧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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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i의 오페라 ‘La Sonnambula(몽유병자)’에서 Amina가 부르는 아리아의 가사 일부:

“Ah,non credea mirarti si presto estinto, o fiore;      

passasti al par d'amore, che un giorno sol(o) duro.

아 믿을 수 없어라 너 꽃이여 그리 빨리 시듦을 볼 줄이야

너는 딱 하루만 지속된 사랑처럼 가버렸구나.”

.

{Maria Callas가 부르는 “Ah! Non credea mirarti”

https://youtu.be/BNX33E4ap_o}


그런데, ‘하루’라는 토막이 사라졌다고 세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매일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해서 금방 대머리가 되지도 않더군.

신진대사란 사라져가는 것들을 배출하고 새것으로 대치하면서 유지하고 성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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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의 개화기는 6-8주, 일단 피기 시작하면 한여름 내 환하다.

내용은 모르지만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처럼, “다행이다.”



*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독일진혼곡) 2곡 “Denn alles Friesch, es ist wie Gras”

(Otto Klemperer cond. Philharmonia Orchestra, 1961)


 



은서 16-05-26 11:35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지만 곧 촛불같은 꽃들이 피고지고 하겠지요.
나무 그늘 아래 노랑 원추리.

모든 육제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으로 이어지던.
역시나 가물거리네요.
어릴 적 암송(대회)하느라 멋모르고 외웠던 베드로전서 말씀
오월인데도 슬슬 더워지고 있습니다.
최고관리자 16-05-26 21:55
 
어린 주일학생에게 그런 말씀을...
이제는 멋모르고 외운 말씀의 맛을 음미하실 연세에 이르셨는가요?
하긴 제게도 중2 때 전도서에 꽂혀서 x폼 잡으며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중얼거리던 날들이 있었지요.

연한 원추리, 독한 참나리?  색깔만으로 속까지 그러려니 해서는 안 되겠지요.
장독대에는 원추리, 섬돌 아래에는 나리, 아니 반대였던가?  옛집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