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원추리가 다 한국에서 나온 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 널리 퍼지고 화훼(花卉)로 재배하는 원추리 종류의 상당수는
한국이 원산지인 것을 가져다가 교배 등을 통해서 개량한 것들이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한국(만)을 원산지로 표시한 것이 네 개인데,
그중에 두 개의 학명에는 일본사람 이름이 달렸다.
원추리의 영어이름은 daylily-틀렸다고 빨간 줄이 그어지지만 day와 lily를 떼지 않고 붙여 써야 옳다, 사전 나빠!-,
학명은 Hemerocallis, 희랍어로 날(日)을 뜻하는 hemera(ἡμέρα)와 아름답다는 뜻의 kalos(καλός).
대충 감이 잡히는지? 꽃의 아름다움이 딱 하루 동안만이라!
“아닌데, 오래 가던데...”라고 저항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그러니까...
해 뜰 때 피었다가 해질 때 시드는 것 맞다, 꽃 하나는.
꽃대에 워낙 여러 송이가 달려 있고 꽃대가 뭉텅이로 솟아있으니까
꽃 하나쯤 지워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낳고 죽고 피고 지는 흐름 속에서 눈대중으로 잡은 절대량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렇구나, 시편 기자는 인생을 두고 그랬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 (90:5, 6)
“인생은...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90:10)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榮華)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사 40:6, 벧전 1:24)
{Belli의 오페라 ‘La Sonnambula(몽유병자)’에서 Amina가 부르는 아리아의 가사 일부:
“Ah,non credea mirarti si presto estinto, o fiore;
passasti al par d'amore, che un giorno sol(o) duro.
아 믿을 수 없어라 너 꽃이여 그리 빨리 시듦을 볼 줄이야
너는 딱 하루만 지속된 사랑처럼 가버렸구나.”
.
{Maria Callas가 부르는 “Ah! Non credea mirarti”
https://youtu.be/BNX33E4ap_o}
그런데, ‘하루’라는 토막이 사라졌다고 세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매일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해서 금방 대머리가 되지도 않더군.
신진대사란 사라져가는 것들을 배출하고 새것으로 대치하면서 유지하고 성장하는 것.
원추리의 개화기는 6-8주, 일단 피기 시작하면 한여름 내 환하다.
내용은 모르지만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처럼, “다행이다.”
*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독일진혼곡) 2곡 “Denn alles Friesch, es ist wie Gras”
(Otto Klemperer cond. Philharmonia Orchestra,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