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7일 일요일

차이코프스키에 대하여 -1 (출생에서 작곡가까지)

광산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다

<차이코프스키 가족사진>
제일 왼쪽이 차이코프스키

1840년 5월 우랄 지방의 외딴 시골마을 캄스코보트킨스크에서 태어난 차이코프시키는  광산 기술관리였던 일리야 케트로비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기 보다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면서 지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안드레예브나는 프랑스 혈통의 여자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를 정도로 어느정도 음악에 식견이 있었고 어린 차이코프스키는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7세에 프랑스 가정교사에게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릴적부터 깜짝 놀랄만한 재능을 선보이긴 했지만, 부모들은 그의 재능을 애써 외면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차이코프스키가 안정된 직장에서 안정된 삶을 꾸리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0살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가면서 음악교육은 멈춰지고 말았다. 

상크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는 법률학교에서 법률공부를 하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식지 않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알아챈 아버지는 뒤늦게 차이코프스키가 독일인 피아노 선생에게 레슨을 받도록 해 주었다. 차이코프스키가 19세가 되었을때 그는 학교를 졸어바고 법무부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적성에 맞지 않는 길이라, 그는 음악을 더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 음악협회가 운영하는 음악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완전한 음악가의 길로...

음악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그의 음악적 열망은 불같이 달아올랐다. 결국 그는 음악을 위해 그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당시 그의 음악교실 스승은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 1829~1894)였다. 그는 서유럽 음악을 러시아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고, 차이코프시키는 이러한 스승의 영향을 받았다.

차이코프스키의 첫 관현악 작품은 <폭풍우>라는 곡이었는데, 이는 스승 루빈스타인의 분노를 샀다. 왜냐하면 튜바, 하프, 잉글리스 호른을 사용하였다는게 이유였다. 이는 새로운 음악을 따라는 것이었고, 루빈스타인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폭풍우, 차이코프스키>

1866년 우수한 성적으로 음악원을 졸업한 차이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카바로 갔다. 루빈스타인의 동생인 니콜라이가 세운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근무하기 위해서 였다. 이때 부터 11년간 차이코프스키는 교수아자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 그는 <러시아 소식>지에 글을 싣는 음악평론가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생활 2년뒤, 그는 최초의 대작인 <교향곡 1번>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다.

<교향곡 1번,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불과 몇년후 그의 스승인 루빈스타인을 뛰어넘는다는 평을 받은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를 발표하게 된다. 이 협주곡은 독일의 대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눈에 들어 유럽 각지에서 연주되고 그에 따라 차이코프스키는 명성을 떨치게 된다.

<피아노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정말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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