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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book적]숱한 밀레니얼 보고서는 잊어라…‘이대남’‘여성혐오’의 뿌리는?
라이프| 2022-12-16 08:10
올겨울 한파가 시작된 14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월, 1998년생 김 군(18세)이 터키와 시리아의 접경에서 실종, IS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군은 트위터에 “요즘 시대는 남성이 차별 받는 시대야. 그래서 난 페미니즘을 싫어하지. ISIS가 좋아”라고 올린 뒤, 자신이 꿈꾸는 공동체를 찾아 떠났다. 학교 폭력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히키코모리처럼 방에서 홀로 지냈음에도 그는 왜 여성을 그토록 혐오한 걸까?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흔히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말하지만 김군 사건은 이상한(?) 여성 혐오가 그 이전 골방까지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92년생 영화평론가 강덕구는 사회비평서 ‘밀레니얼의 마음’(민음사)에서 젠더 갈등의 동의어로 여겨지는 ‘이대남’의 탄생과정을 설명하면서 김 군의 사례를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기도 한 한국의 남성성 문제를 설득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IS 김군은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인 86세대부터 오늘날의 N포세대까지 다종다양한 형식으로 구현된 한국 소년성의 또 다른 유형이다. 아버지와 동일시를 거부하고 저항했던 86세대의 식민지 남성성은 2000년대 자유주의를 만나며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진보적인 남성으로 거듭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경쟁적 능력주의의 자유주의의 도래로 가족과 연인을 형성할 역량을 잃어버린 N포세대 남성성은 뿌리를 열망하며 2010년대 이대남을 탄생시켰다는 히스토리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부모 세대가 일궈냈던 가부장제의 규범이 가짜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 폭로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거세진다. 동시에 밀레니얼 남성들은 정상적 남성성을 맹렬히 추구한다,”는 게 저자가 대변한 이대남들의 정체성이다.

이들은 강제로 끌려가는 징병제에 분개하지만 한국전쟁의 참전 용사들이 푸대접 받는 것에도 분노한다. MZ세대는 남성성이 제대로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저자의 또 다른 흥미로운 시각은 젠더갈등의 기원을 딴지일보로 대표되는 2000년대 발 자유주의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2000년대 경제적 자유가 문화적 자유로 전환하던 시기, 딴지일보는 섹스와 정치를 뒤섞어버린 대담한 진행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진행자인 김어준은 정치인 김근태에게 ‘삼각팬티를 입느냐, 사각팬티를 입느냐’ 묻는가 하면, 유시민에겐 독일 유학 시절 백인 여성과 섹스를 해봤는지, 또 다른 정치인에게는 호스티스가 나오는 술집에 가는지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정치인을 골라내기 위한 절차였다면서도, 당시 딴지일보식 “성적 욕구를 해방하자는 목소리는 성적 착취의 빌미가 된 역설”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해체하고 가부장제를 공격하며 자유를 획득한 2000년대 소년들은 당당한 청년이 돼 자유시민이 됐을까?

그 이후 소년은 영화감독 홍상수가 그려내는 초식남, 찌질이, 루저남이 됐다는 자조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취업난은 섹스와 성, 연애와 결혼 마저 경쟁 재화가 돼 포기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골방의 소년으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밀레니얼 세대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탐구 과제가 되고 있다. 기성세대와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져 온 가운데 최근에는 당사자들이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 발언이 중심을 차지하는 모양새다.

강덕구의 ‘밀레니얼의 마음’ 역시 MZ세대가 말하는 ‘우리는 어떻게 MZ가 됐을까’란 자기 보고서다. 특히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며 겪은 사회적 사건과 문화현상을 밀레니얼 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과했는지,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기세대의 경험을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돌아본 세대론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청년기를 보낸 2010년대를 MZ의 기원으로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는 이들의 삶을 규정했다. 소비 위축과 노동 시장의 불안정이 내면화됐고, 이는 문화 전반에 반영됐다. 이런 가운데 응답하라 시리즈, 복고주의 문화가 중심에 자리하게 된다. 성장이 멈춘 시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시대, 과거가 압도하는 시대가 이들의 삶의 조건이 된 것이다.

파이가 줄어든 상황에서 이들은 공정성에 예민해졌다. 스스로 알아서 제 몫을 챙기는 각자도생은 이들의 삶의 모토가 됐고, 누구나 노력해서 얻은 성과라면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들에게 이념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2010년대는 또한 담론의 시대로 소환된다. 노무현의 죽음, 촛불 집회, 용산 참사, 한미 FTA 등 10대 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거대한 사건들이 부모, 교사 등 어른들의 목소리로 필터링 없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저자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86세대의 담론에 의해 창조된 것이었고, 그곳의 장기말은 바로 밀레니얼이었다”고 했다.

기성세대에 의해 ‘88만원 세대’로 호명된 밀레니얼세대는 이후 ‘헬조선’‘서바이벌 ’‘토닥토닥’‘N포세대’ 등 줄곧 우울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런 부정적 낙인 효과 속에 성인기로 진입한 이들에게 사회는 ‘불안정한’‘탈이념적이고 정치에 관심없는’‘각자도생’의 꼬리표를 붙였다.

“다른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 청년들이 공유한 것은 형제애가 아니라 루저 감수성과 잉여 놀이였다. 의도적인 멍청함을 의미하는 ‘병맛’ 콘텐츠가 유행했다.”며,저자는 이후 스스로 세대를 묶는 담론을 형성할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밀레니얼의 집단 기억이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이라는 축제였다는 점도 정치적 경험의 부재, 이후 정치적 대표성을 만들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2010년대를 풍미한 ‘나꼼수’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과,좌파인문학의 한계, 뉴라이트의 역사수정주의까지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책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탐색이 피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밀레니얼의 마음/강덕구 지음/민음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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