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연일 사상최고가… 포스코, 현대중, 두산중이 선도

한국 중공업계가 힘을 내고 있다. 실물부문은 물론 금융부문에서도 정보기술(IT) 등 타업종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중공업의 컴백’은 상서로운 조짐이다. 일본 경제의 ‘10년 불황’ 탈피에 제조업 부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듯, 한국 경제도 제조업 부활에 따라 ‘레벨업’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선봉은 포스코,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철강·조선·기계업종이다.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해외 수주도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포스코는 5월 30일 새로운 제철기술인 ‘파이넥스’ 공법의 공장을 세계 처음으로 완료했다. “기술 측면에서 경쟁사를 10년 이상 따돌리는 쾌거”라는 것이 철강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말 꿈의 구축함 ‘이지스함(KDX-Ⅲ·7600t급)’을 독자개발했다. 현재 이지스함 보유국은 미국,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 4개국. 하지만 스페인, 노르웨이는 규모가 작아 한국은 사실상 세계 세 번째 보유국이 됐다. 특히 미국, 일본 등보다 건조기간을 1년 이상 앞당겼고, 탑재된 상당수의 최신 무기체계도 국산화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사주 보유 임직원 사기 최고조

담수 및 발전설비업체인 두산중공업도 회생 조짐이 완연하다. 두바이 등 중동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이고,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1조 원대의 대규모 수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두산중공업 측은 “오는 2025년까지 중동에서 발주되는 담수설비가 800억 달러 정도이고, 두산중공업의 시장점유율이 50% 수준임을 고려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400억 달러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밖에도 현대제철의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 조선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세계 1~3위 수성, 삼성엔지니어링의 화려한 변신, 중공업그룹인 STX그룹과 LS그룹의 대도약 등이 중후장대형 제조업의 부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주식시장의 최대 화제주 역시 중공업기업 주식이다. 포스코 주가(6월 14일 종가 47만8000원)는 업황 호전과 인수·합병(M&A) 등을 재료로 연일 급등하며 삼성전자 주가(6월 14일 종가 57만4000원)를 역전하는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3월만 해도 불가능하게 여겨졌지만 이제 격차가 10만 원대 이내로 좁혀졌다. 미래에셋증권은 포스코 목표주가를 60만 원까지 높인 상태다.

현대중공업 주가(6월 14일 종가 32만500원)도 ‘퀀텀 점프’(비약적 도약)를 했다. 지난 3월만 해도 20만 원 돌파가 목표였는데 벌써 30만 원을 훌쩍 넘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최근 두 달 새 1조 원 정도나 늘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경우 큰 폭의 주가 상승에 힘입어 주식평가액 순위에서 처음으로 1위(2조5738억 원)를 차지했다. 전통의 1위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2조4768억 원)을 간발의 차로 따돌렸다.

두산중공업도 올 초 5만 원대이던 주가가 6월 14일 현재 5일 9만2600원으로 10만 원 고지를 넘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중공업 주식이 그동안 많이 올랐음에도 주도주 위치를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일반투자자들도 중공업 르네상스의 도래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지난해 정년퇴직 후 서울 강북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ㅂ씨(57)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STX조선 등 조선주를 중심으로 2억5000만 원을 투자해 투자금이 2배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편의점 운영으로 예상되는 1년 수입의 4~5배를 10개월 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ㅂ씨는 조선주의 단기조정이 임박했다는 주변의 권고로 일단 보유주식을 대부분 처분한 상태다.

조선업계의 활황이 지속하면서 조선업체 임직원의 사기도 최고조에 달했다. 주가가 치솟고 순이익이 늘면서 노조의 기대 수준도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태다.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한창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 노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난 6월 9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에 ‘이익배분제’를 제안했다. 근래 순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나눠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구체적인 제안명세서는 그 규모부터 일단 놀랍다. 올해 당기순이익 중 3000억 원이 넘는 금액의 3분의 1을 내년 초 성과급으로 요구했다. 노사가 합의하면 올해 예상 순익 1조6000억 원 중 약 4000억 원을 챙길 수 있다. 2만5000여 직원이 1인당 1600만 원 정도를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가 이렇게 고마울 수 없어”

중공업 주가가 폭등하면서 우리사주 보유 여부가 해당기업 임직원들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1992년에 주당 1만2000원, 99년엔 5만2000원에 종업원들이 우리사주를 살 수 있게 했다. 6월 14일 종가가 32만500원이니 92년 받은 주식을 갖고 있으면 약 27배의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임직원 중 매수했던 우리사주를 ‘온전히’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직원은 주가가 조금씩 오를 때마다 팔아치워 2000년 전에 대부분 처분했다는 것이다. 다만 2002년 말~2003년 초 주가가 1만7000원대로 떨어졌을 때 주가를 올리려고 자사주를 사들인 임원들과, 아직도 주식을 갖고 있는 장기투자형 직원들은 망외의 소득을 눈앞에 두게 됐다.

한진중공업에 근무하는 ㄱ씨는 최근 희망에 부풀어 산다. “직장 생활 10년 만에 이렇게 회사가 고마운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4년 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놨던 우리사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주당 3500원에 우리사주 3000주를 매입했다. 4년간 팔지 않는 조건으로 회사가 매입가의 절반을 부담해 주당 1650원에 사들였다. 최근 조선주 강세장에 주가가 급등해 6월 14일 종가 기준으로 5만3700원까지 치솟았다. 495만원을 투자해 불과 4년 만에 1억6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4년 간 회사는 ㄱ씨에게 1억5000만 원 이상의 보너스를 지급한 셈이다. 회사가 제시한 ‘4년간 판매금지 옵션’이 임직원들에겐 ‘보약’이 됐다.

최근 우리사주를 받은 STX조선 직원들도 요즘 살맛이 난다. 이 회사는 2005년 10월 7555원, 지난해 11월 9400원에 우리사주를 배정했다. 6월 14일 종가 기준으로 4만3550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7개월 만에 4~5배 가량의 차익을 남긴 셈이다.
2005년 6월 생산직 사원에게까지 스톡옵션을 부여했던 S&T중공업도 요즘 분위기가 좋다. 이달부터 주식으로 전환, 처분할 수 있는데 주가가 많이 올라 1인당 수천만 원의 스톡옵션 대박이 터졌기 때문이다.

현재 주가가 4만1450원인 삼성중공업의 직원들은 그러나 우울하다. 우리사주를 받았으나 2000년 주가가 3000원까지 곤두박질치자 대부분 손절매했다. 타 조선업체 직원들의 ‘우리사주 횡재’ 풍속도를 지켜보며 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중공업 분야의 활황이 지속하면서 조선, 철강 등의 공장이 입지한 거점도시들도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입지한 경남 거제시, 현대중공업이 입지한 울산시 동구는 선진국 진입의 바로미터인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이미 돌파했다.

거제시의 전체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직원은 약 1만1000명, 하청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2만5000명에 이른다. 부양가족을 2인으로만 계산해도 직원과 가족 인구은 7만5000명에 이른다. 거제시의 40%에 육박하는 인구가 ‘대우조선해양 가족’이다. 여기에다 수적으로 비숫한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할 경우, 시민의 80%는 두 회사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사실상 전체 도시가 ‘조선산업의 힘’ 덕분에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거제시가 거두는 세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엄청난 비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거제시와 경상남도에 내는 지방세 총액은 연간 180억~190억 원 수준, 전체 세수의 35%가량이다. 지자체 시대에 자급자족으로 원활하게 지역경제를 꾸려가는 곳은 흔치 않다. 창대하게 성장한 중공업이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구조다.

입지 거점 도시들도 호황 누려

백화점과 쇼핑몰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작년 9월 개장한 홈플러스는 개장 첫날 10억5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현재 매출도 하루 평균 2억~3억 원을 웃돌고 있다. 젊은 부부들이 몰려들면서 2003년 무렵 단 하나도 없던 소아과가 최근엔 10개로 늘었다. 한의원 역시 2000년 20개에서 31개로 불어났다.

현대중공업이 자리잡고 있는 울산시의 작년 평균소득은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인구 20만 명 중 4만 명이 현대중공업 관련 인구인 동구의 경우에는 이미 3만5000달러 수준까지 육박했다. 서울 강남에 비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시 전체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느 복지국가의 도시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중공업 측의 설명이다. 반도체나 LCD산업이 밀집한 일부 지역들도 파급효과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도시 전체가 한 업종에 의해 자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활하는 중공업의 힘이 도시 전체의 삶의 수준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중공업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이유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의 노력 때문이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두산인프라코어의 ‘존재방식’이 이 점을 웅변해준다.

최근 수년 간 연 20%대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매출 1조 원 시대를 맞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생산직 근로자 수는 500명을 겨우 넘는다. 대다수 공정을 자동화했기 때문이다. 대당 3억~4억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기술 집합체인 공작기계 외관이 모두 대형 냉장고처럼 미끈하게 생겨 고급 가전제품을 연상케 할 정도다.

이 회사 김성락 생산관리담당 상무는 “기계산업을 굴뚝산업으로 치부하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공작기계는 제조기술은 물론 최첨단 IT기술까지 접목한 최고 기술 결정체”라고 말했다. 조선, 철강, 기계, 플랜트 등 한국의 중공업이 20세기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IT분야의 첨단기술과 결합한 한국 중공업의 ‘위대한 진화’가 대한민국 21세기 성장의 신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기홍 기획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