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인문학] 식물진화의 두 가지 방향, 난초와 국화

문화 / 이동고 자연생태연구가 / 2016-06-15 10:29:34

식물진화역사 족보인 수형도를 보면 식물들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다 속 조류로부터 선태이끼류, 양치식물, 겉씨식물을 지나 속씨식물로 진화하고 그 속씨식물 중 1억2000만 년 전에 쌍떡잎식물이 먼저 나타나고, 7000만 년 전에 외떡잎식물이 나타나게 된 사실 말이다. 쌍떡잎식물 진화의 정점은 국화과 식물이 차지하고 외떡잎식물의 정점은 난초과 식물이 찍었다.

12난초
새우난초, 난초꽃을 자세히 보면 특이한 모습이 벌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동고

난초과 식물은 난초마다 신기한 꽃모양과 향기를 가지고 있어 귀하게 여긴다. 난초과 식물 반 정도는 꿀을 생산하여 곤충을 유혹하지만 어떤 난초는 수벌에게 암벌을 유혹하는 향수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향기 없는 난초가, 꿀 있는 난초를 모방하여 매개곤충을 끌어들이는 사기도 친다. 더 놀라운 것은 난초과 식물이 암벌 흉내를 낸다는 사실이다. 생김새나 촉감뿐 아니라 암벌 냄새까지 풍긴다. 교미를 위해 수벌이 달려드는 과정에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새로운 난초를 구하기 위한 식물사냥꾼들의 탐험은 치열했다. 19세기말 영국 왕실에는 난초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었고 난초는 아주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샌더라는 사람은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난초 온실을 짓고 난초사업에 뛰어 들었다. 난초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난초사냥꾼을 고용하거나 난초를 구해오면 보상을 주었다. 강을 건너가다가 익사를 당하고 실종되거나 살해당하거나 비명횡사한 난초사냥꾼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늪과 숲에 자라는 난초를 구하려는 직업 자체가 생명을 내놓고 하는 일이었다. 높은 나무껍질에 붙은 난초를 채집하러 큰 나무를 베는 일이 허다하여 많은 삼림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난초꽃과 같이 좌우대칭인 꽃들은 모두 벌 등이 들어가기 좋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꽃이 인간을 위해 다양한 모습을 갖춰온 것은 아니었다. 난초과 식물처럼 정교하게 서로 맞춘 공진화는 낭비되는 비용 없이 가장 높은 효율로 후세대 종자를 얻는 방법이었으나 특정 매개곤충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안한 것이었다. 서로 영향을 주는 공진화는 정교한 만큼 범위와 대상이 좁아져 버렸다. 매개곤충이 사라지거나 난초가 사라지면 한 쪽도 마찬가지로 소멸되는 외길 진화방식이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꽃잎은 사실 곤충들의 착륙장이자 암수술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다.

해바라기 같은 국화과 식물은 진화방식을 달리했다. 사방으로 열린 곤충들의 착륙장이면서 어디서든 꿀을 얻을 수 있는 매개곤충마저 다양하게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벌과 나비 심지어는 파리목에 속하는 ‘등에’도 불러들인다. 국화과 꽃에 ‘꽃잎’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사실 가짜 꽃잎이며 곤충을 멀리서도 불러들이는 광고전광판이었고 해바라기 씨앗이 맺히는 위치처럼 꽃들은 안쪽에 따로 피어난다. 바깥에 피어나는 꽃잎을 ‘혀’를 닮았다 해서 ‘설상화’라 부르고 중간에 피는 꽃들은 ‘대롱’같은 구조라 ‘관상화’라 불린다. 꽃피는 순서도 바깥에서 안쪽으로 서서히 피어나기에 개화기간도 아주 길어 더 많은 여러 곤충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가을에 국화전시회가 인기를 끄는 것은 바로 그 긴 개화기간이 만든 오랜 향기덕택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매개자와 열린 방식을 택한 것이 국화과 식물이었고 지금도 드넓은 지역에 번성하는 것이 국화과 식물이다. 해바라기, 구절초, 마갈렛, 엉겅퀴, 쑥부쟁이, 고들빼기, 참취, 민들레, 잇꽃 등등 어느 계절이라도 그 꽃을 다양하게 피우는 것이 국화과 식물이 되었고 그 범위는 점점 넓어져가고 있다.

반면 난초과 식물은 꽃피는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곤충과 만나지 못하면 종자를 맺지 못하는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 영역은 좁아졌고 한정된 특정지역에서 특이한 난초 희귀종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자연번식이 어려우니 생체 일부를 떼어내 체세포분열로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조직배양이 난초 번식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시험관에서 잘 커서라도 외부환경에 나올 때는 세균과 바이러스 공격을 받으며 이겨내는 개체만 성장할 수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수분매개자를 구할 수밖에 없는 난초과 식물은 결국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지고 오래 모여 살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엄마식물에서 가까운 곳에는 환경에 적응된 곰팡이, 바이러스 등의 질병이 흔하기 때문에 싹이 트면 똑같은 병에 걸리기 쉬웠다. 경쟁에도 치이고 열매와 씨앗은 멀리 떠나야 했다. 그래서 그럴까? 난초과 식물은 먼지 같이 가볍게 종자를 만들어, 멀리까지 퍼뜨리는 전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가벼운 씨앗은 영양분도 적어 흙 속 균사 도움 없이는 싹틈도, 성장도 못할 정도였기에 ‘난초는 귀하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면 난초와 같이 당신에게 특이하게 맞춘 편안하고 협소한 조건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해바라기처럼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매개곤충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번성을 누릴 것인가? 선택은 바로 당신에게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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