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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정의의 6 원칙과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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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버섯의 신비(112)

아래 버섯 이야기는 생태정의의 6 원칙(Six Ecojustice Principles)에 비추어 그동안 버섯을 관찰하면서 느꼈던 것을 재 조명해 본 것이다.

1. 본래 고유가치 원칙(The Principle of Intrinsic Worth)

온 우주와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 안에 본래 정체성과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삶에 실리적인 유익을 주기 때문에, 또는 신(조물주)의 손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의 복합체인 전 지구와 그 지구를 구성하는 바위로부터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생물 무생물을 막론하고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생태계의 구성체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달걀버섯. 이 버섯은 균근균이다. (이 글에 나오는 버섯들은 이야기 내용과 특별한 관계가 없음을 알려 드린다.)

버섯은 그냥 거기 숲속에 그렇게 저 홀로 스스로 있다. 인간의 인식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그냥 거기 그렇게 있으면서 마음껏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만 찰나의 순간에 거기 존재하는 것이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그 버섯이 내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버섯의 존재는 이러한 내 표현과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거기 홀로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하고 있다. 버섯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생명형태가 다 기적(奇蹟)이지만, 버섯은 기적 가운데 기적이다. 생명의 신비, 미세한 가루(포자 spore)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미세한 가루로 돌아가는 버섯, 그 버섯은 자기 과시가 없다. 그늘진 곳에서 억만년을 두고 홀로 피어나 저 홀로 삭아든다. 버섯은 굳이 양분을 생산해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미 있는 버림받은 낡은 것들을 다시 활용하고, 자기 일을 마친 다음에는 반드시 이 지구(땅)에 되돌리는 일을 한다. 세상에 커다란 짐이 되는 쓰레기들을 처리해 주는 것이다. 그 쓰레기를 분해하여 비옥한 흙으로 만들어 주는 귀한 존재이다.

2. 상호연결 원칙(The Principle of Interconnectedness)

지구는 생존을 위하여 상호의존하고 상호연결 된 생물체들의 공동체이다. 지구는 자연법칙에 따라 통제되는 독립된 부분들로 이루어진 기계적 구조물이 아니다. 지구 안의 모든 생물종과 그 생물종의 구성원들은 상호관계의 복합적인 연결망 안에 상호연결 되어있다. 그러므로 인간도 단지 그 지구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느티만가닥버섯

버섯은 생태계에서 상호 의존관계를 극명하게 가르쳐 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숲속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의 생명력은 버섯 같은 균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공로 때문이다. 버섯을 식물 가운데 하나로 보기 쉬운데, 버섯에는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탄산동화작용을 통하여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래서 기존(旣存)의 양분을 가진 다른 유기물, 이를테면 나무나 곤충 또는 분(糞) 같은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버섯은 죽은 나무나 뿌리에 돋기도 하지만(부생균), 산 나무나 뿌리 또는 곤충에 돋아 기생하기도 하고(기생균), 또는 나무뿌리 근처에 붙어서 나무에게 수분과 인이나 질소와 같은 무기영양분을 공급하고, 대신 나무로부터 버섯은 당분을 얻으면서 공생하는 것도 있다(균근균 즉 공생균). 그래서 버섯의 균사는 나무뿌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90%가 2500여종의 버섯 균사와 공생 관계에 있다고 한다. 해마다 9월경 뻗어가기 시작하는 소나무 짠 뿌리 가까이에서 소나무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송이버섯 같은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주로 썩은 나무에 돋는 부생균 버섯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작업과 땅을 다시 살리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공생균과 부생균은 우주 자연세계 및 지구의 양육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비록 부생균이라 할지라도 어느 일정한 나무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자작나무버섯은 반드시 죽은 자작나무에만 돋는다.

그리고 비록 다른 살아있는 나무에 붙어 그 나무에 해가 되는 기생균의 경우를 보아도 기주(寄主)가 자기를 희생하여 죽어가면서도 기생균을 양육한다는 뜻에서 “모든 것은 다른 것을 먹이고 양육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이 세상의 모든 관계가 일차적으로 양육의 관계”(Thomas Berry 신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주를 있게 만드는 것은 자기희생이라고 하며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위해 희생된다”는 뜻에서 기생균 버섯의 존재는 그 기주인 나무나 곤충이나 또는 다른 버섯의 희생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버섯은 우리가 상호 의존하는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에게 생태계의 상호 의존관계와 주고받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상생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간인 나라는 존재도 홀로가 아니다. 내 주위에 저 광범위한 관계의 그물망에 연결되어 있다.

3. 목소리 원칙(The Principle of Voice)

지구는 경축할 때는 물론 불의에 대항할 때에도 그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체이다. 지구는 생물학적으로 영적으로 살아 있는 주체 또는 실체(living entity)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이자 주체이지 엄격한 법칙으로 다스림 받는 객체 또는 기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또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세발버섯. 이 버섯은 부생균이다.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사랑하고 구원하는 언어이며 우리에게 또 서로 말하고 있다. 지구의 언어는 침묵이다. 밤의 침묵, 자궁 안의 침묵, 싹트는 씨앗의 침묵, 웃음으로 활짝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침묵, 사막의 침묵......그러나 지구는 바다의 거친 물결과 새와 개울의 지저귐과 졸졸 흐르는 소리, 바람의 간들거림 속에서 말한다. 말이 없고 들리는 소리 없어도 전 우주는 말하고 있다. 지구는 우주 안에서 목소리를 가진 주체이다.

숲 속의 버섯들은 다정하다, 슬프도록

아 거기 홀로 생명이 있다는 놀라움

우주의 비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조용하기만 하다.

오랜 옛날부터 쌓여 온 사연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저렇게 침묵으로 피어나고 슬어지고

또 피어나고 슬어지는가 보다.

깊은 밤 푸른 별들이 그 긴긴 사연에 귀 기울이고

스쳐가는 바람이 귓결에 한자락 이야기를 안고 간다.

숨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생명 이야기는

한 없이 풀어내어도 그 끝이 없다.

그래서 한 작은 생명조차

가슴 설렘 없이 만날 수 없는가 보다.

그래서 새로운 버섯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그토록 뛰는가 보다.

생명 이야기를 이어가는 저 깊은 침묵의 몸짓

소리 없이 피어나고 또 흔적 없이 스러진다.

바람이 안고 간 그 이야기가

대를 이어 또 피어나고 피어나는 것,

그것이 버섯 아닌가!

그래서 버섯관찰은 버섯과 나누는 신비하고 은밀한 대화이며 사랑의 속삭임이다. 은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때때로 사랑의 극치를 경험하게 된다. 상대를 황홀하게 바라다보며 감탄함 없이 어찌 사랑을 나눈다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버섯이라는 신비한 존재가 말하고 있는 자기 존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행위가 바로 버섯관찰이다. 버섯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늘어나면 늘어갈 수록 그 만큼 더 더욱 버섯의 신비와 그 들려 주는 이야기에 매료당하게 된다.

4. 목적 원칙(The Principle of Purpose)

온 우주와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역동적인 우주적 설계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설계의 목적 가운데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지구는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의 복합체로 짜인 설계 또는 목적에 따라 기능한다.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우주사건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혓바늘목이, 자실체 전체가 투명한 젤리 처럼 생긴 부생균이다.

우선 버섯관찰은 눈높이를 낮추는 일이다. 언제나 저 높은 곳, 더 높은 지위만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낮은 곳, 이 땅위로 그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나라는 인간이 지구 곧 땅에 연결되는 놀라운 방법이다. 내가 살고 있는 푸른 별 지구와 땅, 그 주위를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귀를 땅에 가까이 대고 그 미물들, 말하자면 오랜 세월 그 곳에서 제 할일을 수행하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들어내고 있는 버섯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기생균이라 할지라도 각각 그 하는 역할과 목적과 뜻이 있다. 오늘날처럼 화학 약품에 의존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무익하다고 생각되는 곤충이나 식물들을 한꺼번에 없애려는 심산으로 살충제나 제초제를 남용 살포하여 오히려 유익한 동식물들마저 싹쓸이 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기생균은 곤충의 개체수를 조절해 주는 말하자면 자연은 자연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진리를 일러주고 있다.

5. 상호 보호관리직 원칙(The Principle of Mutual Custodianship)

지구는 지구 공동체의 다양성과 조화균형을 지속하기 위하여 피차 동반자로서 상호 보호관리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영역이지 지배를 위한 영역이 아니다. 이 원칙의 전통적 청지기직 모델은 지구 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말해 주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위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 한 부분에 지나지 않고 다른 생물종과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생존을 위하여 생태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보호관리직도 상호 파트너십 안에서 지구 공동체의 다른 보호관리직 담당자들과 더불어 동반자임을 일러줄 뿐이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콩버섯. 반을 갈라보면 내부에 나이테(환문)이 있는 역시 부생균이다.

버섯은 모든 버림받은 것들을 분해하여 비옥한 흙을 만들어 내면서 흙을 재생하는 일을 태초부터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이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숲속의 여러 주인공들 가운데 버섯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신의 명령, 곧 땅을 잘 돌보고 가꾸고 보존하라는 명령, 다시 말하면 지구에 대한 보호관리직(custodianship)을 어김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여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생물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식물들처럼 광합성 작용으로 탄수화물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버섯이나 균류처럼 모든 유기물들을 분해하여 다른 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인간은 버섯이나 식물들이 생산해낸 것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이러한 소비자일 뿐인 인간이 할 일이란 그 지혜를 사용하여 자연이 자연을 다시 살리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한 가운데 버섯은 인간이 마구 살포한 독극물들을 흡수함으로써 지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소식이다. 인간은 다만 그 지구를 다시 살려주는 버섯의 역할에 동반자로서 지구와 땅을 보호해야 하는 보호관리직을 가진 존재의 하나일 뿐이다.

6. 거부저항 원칙(The Principle of Resistance)

지구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손으로 말미암는 불의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인간들의 불의에 적극 거부 저항하고 있다. 땅이 동물들이,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고 있다.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쓴송이. 갓과 주름과 대에 연초록색이 있는 균근균이다.

왜 독버섯이 있을까 물론 동물이나 인간이 버섯을 먹어 없애면 포자를 퍼뜨리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선 느끼는 것은 독버섯이 우리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제어해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독버섯이 없었다면 아마도 욕심 많은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모두 먹어치웠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야성(野性 wildness)과 강력한 폭력성(powerful violence)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 역시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지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연세계에는 언제나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어두운 면도 있어서 두 가지 면을 다 함께 직시해야 한다. 독버섯은 자연 세계의 만물이 지닌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어두운 측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이처럼 독버섯은 또한 파괴의 무서움을 경고해 준다. 버섯이 있음으로 하여 생태계의 순환이 잘 이루어진다는 버섯의 창의성(creativeness)도 깨닫지만, 그 파괴성(destructiveness)도 깨닫게 한다. 기생균 버섯은 때로 산 나무를 죽인다. 이를테면 뽕나무버섯은 산 나무의 뿌리에 기생하여 뿌리 썩음 병을 일으키는 버섯이다. 동충하초는 곤충의 번데기나 유충에 기생하는 기생균으로 그 곤충을 죽인다. 자연이 지닌 파괴의 무서움도 인식해야 한다. 거기 따라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도 느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생균이 지닌 파괴성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충하초의 경우 곤충의 개체수를 조절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의 파괴성 또한 우주 안의 조화와 균형을 위하여 그 자체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며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형성해 주면서 그 한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버섯의 독성은 물론 기생균의 존재는 말하자면 인간의 욕심은 물론 다른 곤충들의 욕심으로 말미암는 불의한 자연 파괴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식자들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요즈음 지구와 땅에 저지르는 인간의 죄악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땅이 신음하고 있다. 동물들이 모든 생명체들이 신음하고 있다. 푸른 별 지구의 온난화, 사막화, 기후변화, 수면상승, 생물 멸종위기...이로 말미암는 온갖 자연재해...이 모두가 고통가운데 있는 지구와 땅의 신음이요 저항 아닌가 엄청난 산사태는 인간의 지구에 대한 불의에 저항하는 땅의 울부짖음이 아닌가

www.jadam.kr 2011-10-04 [ 최종수 ]
껄껄이그물버섯 류(한국 미기록종?) Leccinum albellum(Peck)Singer회갈색 호도껍질 모양의 껄껄이그물버섯 류로 상처를 내어도 변색하지 않는다. 한국의 회색껄껄이그물버섯과 유사하나 이것은 건드리면 회흑색으로 변한다.

지구가 당면한 생태학적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버섯 관찰에 몰두하면 할수록 인간 중심의 자연이해, 이를테면 식용, 약용 등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에 버섯에 관심을 두는 일로부터 점점 자연자체, 버섯자체에 대한 이해로 그 관심의 초점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태초부터 지구와 그 안의 버섯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 자체대로의 존재 이유와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존재해 왔고 존재하며 또 존재할 것이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자체의 신비를 인간인 내가 보고 느끼고 경탄할 따름이다. @

참고문헌:

“생태정의의 6원칙”에 대해서는 Norman C. Habel, Reading from the Perspective of Earth, The Earth Bible Volume One,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p. 24.

기사입력시간 : 2011-10-04 01: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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