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도 출신 광주대학교 설립자 김인곤 선생 동상.

송이도 항에 세워진 안내석과 안내판.

수 천년 동안 칠산바다의 거친 파도와 물결이 만들어낸 송이도 몽돌해변.

송이도 상수도관리소 장현수씨가 찾아낸 초분의 모습. 이를 통해 최근까지 초분 장례를 치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칠산바다를 지키는 선신과 악신이 싸우는 과정에서 부서진 돌들이 만들어졌다는 송이도 몽돌.

칠산바다의 풍요로움과 자비로움을 기원하기 위해 당제를 지낸 팽나무.

송이도(松耳島). 섬에 소나무가 많고 귀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붙였다고 하나 송이도행 페리선에서 본 섬은 송이버섯 모양처럼 둥글게 보인다.

칠산바다의 거칠고 거센 바다가 어떤 때는 풍요를 주고 어떤 때는 고난을 줬다. 송이도 사람들에게 칠산바다는 그야말로 풍요와 부를 바라는 대상이기도 하고 원망과 고통을 주는 실체이기도 했다.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등의 연속된 이름으로 명명된 칠산도를 품고 있는 칠산바다는 행정구역상 송이도 관할이다.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산462번지가 일산도이고, 산463번지가 이산도이며 칠산도는 송이리 칠산도이다. 천연기념물 제389호인 칠산도 괭이갈매기, 노랑부리 백로와 저어새 번식지로 보호구역으로 특별관리되고 있는 무인도이지만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에 익은 이름이다.

송이도는 주민 100여 명이 사는 조그마한 섬이지만 현재 하루에 두 번 페리선이 다니고 또 광주대학교를 설립한 김인곤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하얀색의 몽돌해변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해변에서 수 천년의 거센 파도와 물결이 만들어낸 천상의 조각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몽돌해변의 파도소리가 신들의 싸움소리로 들리는 것만 같다. 전라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하얀색의 몽돌해변이 송이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송이도가 품고 있는 칠산바다는 거칠기로 유명하다. 뱃길을 모르면 아무나 함부로 건널 수도 없었다. 뱃사람들은 칠산바다를 건너기 위해 반드시 신에게 고사를 지냈다. 칠산바다는 조기와 새우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수 많은 어민들의 땀과 눈물과 생명을 요구했다. 거칠고 거센 칠산바다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민들은 칠산바다를 잔잔하고 평온하기를 기원했고 ‘개양할미’와 ‘개양영감’을 신으로 모셨다. 한 바다에 여신과 남신이 동시에 존재하고, 전라도의 전통어선인 멍텅구리배에서는 선주의 선택에 의해 신(배서낭)이 결정되기도 했다.

송이도와 낙월도 그리고 안마도 등 칠산바다를 끼고 있는 영광군 소속의 어민들은 당제를 지냈다. 특히, 아들 4형제 등 남성인 개양영감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칠산바다를 건너 위도 등 현재의 전라북도의 섬들에서는 개양할미와 그의 여덟 딸들을 신으로 모시고 치성을 드렸다. 그 흔적으로 송이도의 거대한 팽나무와 왕소사나무 등에서 칠산바다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된 칠산바다를 이겨내고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전라도 사람들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흔적이다.

풍요와 경제적 부를 안겨주면서 한없이 부드럽고 사랑스럽던 칠산바다가 또 어떤 때는 엄청난 고난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압박으로 다가오니 어민들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신의 노여움으로 느껴지고 그것을 풀기 위해 반드시 당제를 지냈다. ‘개양할미’라는 여신과 ‘개양영감’이라는 남신을 모시고 치성을 드리면서 한국인 식문화의 중심에 있는 국민생선 조기와 국민젓갈 새우를 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해안 칠산바다 인근에는 과거 고려와 조선시대 조운선이나 무역선 등이 난파돼 현재 대량으로 발견되는 보물 지역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또 정유재란 시 진도 울돌목 명량해전에서 모든 전쟁물자를 소진하고 전투할 수 있는 무기 하나 보급을 받지 못해 고군산열도의 선유도까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순신 장군이었지만, 왜구들은 이 거센 칠산바다를 건너지 못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물러갈 수 밖에 없었다.

칠산바다 덕분에 진영을 다시 추스린 이순신 장군은 왜구들이 물러난 것을 보고 다시 내려와 고하도에다 통제영을 차리고 병력과 식량를 조달한 다음 고금도로 진출, 명나라 진린 도독과 연합해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대역전승을 거뒀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 칠산바다가 없었다면 과연 이순신은 무사할 수 있었을까? 이미 육지는 왜구들에게 점령돼 있었지만 칠산바다 덕분에 재기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칠산바다의 중심 송이도에는 서해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초분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분을 만들어 육탈을 시키고 뼈만 추슬러 나중에 매장을 하는 장례의식으로,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신들에게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정월에 사망한 사람들은 매장을 하지 않고 반드시 초분을 해 부정을 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정한 행위로 칠산바다를 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섬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민간신앙적인 행위가 장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완도 청산도와 여수 금오도 등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 사라지고 관광용으로만 만들어 놓았으나 최근까지 송이도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초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찾아 나섰다. 송이도 상수도관리소 장현수씨를 만났으나 그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오히려 반문했다. 요즘은 초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조기와 새우가 사라져 치성을 드릴 만한 대상 자체가 사라진 데다 정월에 사망하더라도 자식들이 육지로 가서 장례를 치르고, 이중장제를 치뤄야하는 초분은 번거롭기 때문에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그를 만나 초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왕소사나무 군락지를 찾아갔다. 도착해 보니 106본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괴이한 나무들이 현실에 있는 것 같은 신비한 모양이었다. 어민들이 당제를 지낸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거대한 팽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풍광이 너무나 낯설었다. 이 팽나무들이 바로 칠산바다 신들의 노여움을 풀고 치성을 드리기 위한 어민들의 신성한 장소였다.

그런 번영을 송이도가 낳은 광주대학교 설립자 김인곤 선생의 동상 앞에서 다시 느꼈다. 동상만 세워놓지 말고 송이도를 이제 광주대학교에서 다시 살렸으면 한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왔다. 문자가 왔다. 초분 사진이었다. 송이도 장현수 소장이 드디어 여기저기를 탐문한 끝에 초분을 찾았다는 것이다. 2020년 새해 벽두에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국민생선 조기와 국민젓갈 젓새우를 만들기 위해 칠산바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송이도 어민들의 눈물과 땀과 정성이 깃들어 있는, 죽음마저도 칠산바다 앞에서는 겸손해야 했던 전라도 사람들의 정성으로 초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칠산바다는 지금도 거세게 출렁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바다였고, 거센 파도와 물결을 이겨내기 위한 뱃사람들의 고사와 당제 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러면서도 개양할미의 8명의 딸들과 개양영감의 4명의 아들들이 보호하고 있는 칠산바다다.

보살섬으로도 불리는 송이도가 칠산바다를 품고 있다. 정말 전라도를 대변하는, 전라도가 한반도를 위해 칠산바다에 치성을 드린 노력이 어떠했는가를 느낄 수 있는 섬이었다. 칠산바다는 우리 한반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