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타우린의 재발견

2023.06.14 14:30
타우린이 많은 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타우린이 많은 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살다 보면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대할 때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곤 한다. 생체 분자인 타우린도 그런 경우로 오징어에 많이 들어있다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CF로 유명했던 한 에너지(피로회복) 드링크의 주성분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수백 가지 생체 분자가 등장하는 생화학 교재에 나오지 않고 대학원 시절 읽은 수많은 논문에서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단백질을 이루는 정규 아미노산이 아니라는 걸 들었지만 정작 구조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2018년 저명한 영양학자 브루스 에임스의 논문을 읽고 타우린을 다시 보게 됐다. 이 논문에서 에임스는 부족해도 당장 생존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꼭 필요한 영양소를 ‘장수 비타민’이라고 부르며 9가지를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타우린이다. 


논문에 따르면 타우린은 인체에서 만들기는 하지만 양이 적어 음식으로 보충해줘야 한다. 타우린 부족은 다양한 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높이는데 특히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에 치명적이다. 


타우린은 해산물에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에임스는 과거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이 장수한 주요인을 타우린으로 돌리고 있다. 논문을 읽고 타우린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잊어버렸다.
 

나이에 따른 타우린의 혈장 농도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생쥐와 붉은털원숭이, 사람 모두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패턴을 보인다. 사이언스 제공
나이에 따른 타우린의 혈장 농도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생쥐와 붉은털원숭이, 사람 모두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패턴을 보인다. 사이언스 제공

● 나이 들수록 농도 떨어져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타우린 부족이 노화의 동인’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인도 국립면역학연구소와 미국 컬럼비아대 등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11쪽에 이르는 긴 논문에서 중년 이후 타우린 보충이 노화 관련 각종 증상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물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건강수명의 열쇠 가운데 하나가 타우린이라는 말이다.


연구의 발단은 동물에서 나이가 들수록 체내 타우린의 농도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생쥐와 붉은털원숭이, 사람에서 나이에 따른 혈장 타우린 농도 데이터를 보면 다들 나이가 들수록 타우린 수치가 떨어져 노년에는 젊을 때에 비해 무려 80%나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이가 들면서 체내 농도가 늘거나 주는 대사물질이 많으므로 이 현상만으로 타우린 부족이 노화의 동인(driver)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섭취나 투여로 부족분을 채웠을 때 활기를 찾고 노화가 늦춰져야 한다. 널리 알려진 노화의 동인인 NAD+ 부족 역시 전구물질인 NR이나 NMN을 보충했을 때 노화가 억제되는 걸 보였기에 인정된 것이다.


참고로 NAD+는 500여 가지 효소의 작용을 돕는 조효소의 역할을 하거나 때로 효소의 기질로 작용해 세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반응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세포호흡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의 산물인 피루브산을 분해해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드는 과정에서 조효소로 참여한다. 


미토콘드리아에서 NAD+의 농도가 낮으면 이 과정이 느려지고 따라서 ATP를 충분히 만들지 못한다. 이렇게 에너지원이 부족해지면 평소 에너지를 많이 쓰는 조직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바로 근육과 뇌다. 근육이 줄어들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게 노화의 대표적인 증상임을 떠올린다면 NAD+의 중요성을 실감할 것이다.

 

타우린(4)의 주된 생합성 경로로, 아미노산 시스테인(1)을 출발물질로 해서 3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NAD+가 조효소로 참여한다. 나이가 들수록 NAD+가 줄어드는 게 타우린이 줄어드는 한 요인일 수도 있다. 사이언스 제공
타우린(4)의 주된 생합성 경로로, 아미노산 시스테인(1)을 출발물질로 해서 3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NAD+가 조효소로 참여한다. 나이가 들수록 NAD+가 줄어드는 게 타우린이 줄어드는 한 요인일 수도 있다. 사이언스 제공

● 여러 생체 지표 개선


타우린의 분자 구조를 보면 생체 분자라기에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타우린을 비정규 아미노산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카복시기(-COOH)가 아니라 설포기(-SO2OH)가 붙어있는 아미노설폰산이다. 상상력을 발휘해도 생체에서 이런 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주된 생합성 경로를 보니 황 원자를 함유한 정규 아미노산인 시스테인에서 불과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분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합성 세 번째 단계인 하이포타우린이 타우린으로 산화하는 반응에서 NAD+가 반응을 촉매하는 조효소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NAD+ 농도가 낮아지므로 이 반응의 속도가 떨어지는 게 타우린이 덜 만들어지는 요인의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중년인 14개월부터 죽을 때까지 매일 타우린을 먹였다. 그 결과 타우린 보충제를 먹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중앙 수명(실험동물의 절반이 죽을 때 나이)이 암컷은 12% 수컷은 10% 늘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7~8년 더 길어진 셈이다.


참고로 NAD+ 전구체인 NR을 생쥐의 노년기인 23개월부터 먹인 실험을 보면 섭취군이 비섭취군에 비해 수명이 5% 더 길었다. 보충제를 먹기 시작한 시기가 달라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타우린의 효과가 상당한 것만은 분명하다.


논문을 보면 타우린을 섭취한 생쥐 역시 NAD+와 마찬가지로 각종 생체 지표가 나아진 결과 건강수명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체지방 증가가 억제되고 혈당수치가 떨어지고 골밀도가 개선되고 기억력이 좋아진다. 심지어 노화와 관련한 심리 지표인 불안이나 우울증에 해당하는 행동도 줄어든다.

 

타우린은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에 들어가 특정 tRNA의 안티코돈 염기를 변형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 타우린이 부족하면 변형 tRNA도 부족해져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된다. EMBO 저널 제공
타우린은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에 들어가 특정 tRNA의 안티코돈 염기를 변형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 타우린이 부족하면 변형 tRNA도 부족해져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된다. EMBO 저널 제공

타우린 보충은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 네트워크에도 영향을 줘 DNA 손상을 줄이고 정상세포가 기능을 잃고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는 노화세포로 바뀌지 않게 한다. 또 면역계 불균형을 개선해 염증을 억제한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특정 tRNA가 충분히 만들어지게 해 단백질 합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되는 일을 예방한다. 논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타우린 보충으로 체내 합성의 부담을 줄여 NAD+ 가용량을 늘리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포유류이기는 하지만 생쥐는 덩치도 너무 작고 야행성 등 행동 패턴도 달라 실험 결과가 사람에서도 재현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중년이 시작되는 15살에(사람으로 치면 45~50살) 6개월 동안 타우린 보충제를 먹였다. 그 결과 생쥐와 마찬가지로 노화 관련 각종 생리 지표가 대조군에 비해 뚜렷이 개선됐다. 다만 수십 년이 걸리는 노화 지연 효과 실험은 하지 못했다.


이처럼 세포 생리에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미친 결과가 노화 억제로 나타난 셈이다. 다만 관여하는 효소 반응을 통해 메커니즘을 짐작할 수 있는 NAD+와는 달리 타우린의 작용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르는 게 많다. 예를 들어 타우린은 담즙산염이 만들어질 때 들어가는 성분이므로 보충을 하면 소장에서 지방 흡수가 늘 것임에도 오히려 체지방이 준다. 후속 연구로 분자 수준의 활약상이 밝혀진다면 타우린의 위상은 지금보다 한층 높아질 것이다.

 

실험 결과 타우린은 다양한 경로에 개입해 세포 노화를 늦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노화를 촉진하는 DNA 손상, 활성산소, 염증반응 등을 직간접적으로 억제하고(빨간 선), 젊음을 유지하는 줄기세포재생, 자가포식, 후성유전 패턴 안정화 등을 돕는다(녹색 선). 다만 분자 차원의 작용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른다. 사이언스 제공
실험 결과 타우린은 다양한 경로에 개입해 세포 노화를 늦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노화를 촉진하는 DNA 손상, 활성산소, 염증반응 등을 직간접적으로 억제하고(빨간 선), 젊음을 유지하는 줄기세포재생, 자가포식, 후성유전 패턴 안정화 등을 돕는다(녹색 선). 다만 분자 차원의 작용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른다. 사이언스 제공

● 채식주의자는 중년 이후 타우린 보충해야


타우린은 오징어나 조개 같은 무척추 해양 동물에 특히 많이 들어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들은 이온 농도가 높은 바닷물에 맞서 세포의 타우린 농도를 높여 삼투압을 낮추는 전략을 진화시킨 결과다. 반면 척추 해양 동물은 타우린을 보조적으로 쓰는 대신 산화트리메틸아민과 요소로 삼투압을 조절하는 쪽을 택했다.

 

어류의 후손인 육상 동물 역시 삼투압 조절에는 타우린을 보조적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다른 쓸모도 진화시켰다. 특히 포유류는 담즙산염의 성분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용도를 개발해 체내 타우린의 양이 적지 않다. 타우린이라는 이름도 소(라틴어로 taurus)의 담즙에서 처음 발견해 붙인 것이다. 육식 동물인 고양이가 타우린 합성 능력을 잃어버린 것도 먹이 섭취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영장류가 열매와 나뭇잎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비타민C 합성 유전자가 고장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물에서는 타우린이 중요한 생체 분자임에도 식물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삼투압 조절은 세포벽과 당 분자가 주로 맡는다. 그래서인지 식물에는 타우린이 거의 들어있지 않다.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은 몸이 만들어내는 타우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별문제가 안 되지만(완전 채식을 하면 체내 농도가 20% 정도 낮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중년 이후에는 완전 채식이 타우린 부족을 심화시켜 노화를 앞당길 수도 있다. 잡식을 하는 사람들도 보통 나이가 들수록 식사량이 줄고 고기를 덜 먹는 경향이 있어 음식으로 섭취하는 타우린이 적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고기를 더 먹는 건 다른 성분이 노화를 촉진할 수 있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물론 오징어나 조개를 자주 먹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타우린은 오징어나 조개 같은 무척추 해양 동물에 많이 들어있다. 이들은 세포 내 타우린 농도를 높여 바닷물에 맞서 삼투압을 조절하는 전략을 진화시켰다. 타우린이 인체에 미치는 다양한 효과가 보고됐음에도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건 담즙산염 재료나 삼투압 조절 물질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 아닐까. 위키피디아 제공
타우린은 오징어나 조개 같은 무척추 해양 동물에 많이 들어있다. 이들은 세포 내 타우린 농도를 높여 바닷물에 맞서 삼투압을 조절하는 전략을 진화시켰다. 타우린이 인체에 미치는 다양한 효과가 보고됐음에도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건 담즙산염 재료나 삼투압 조절 물질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 아닐까. 위키피디아 제공

운동 역시 체내 타우린 수치를 약간 올리는 효과가 있다. 흥미롭게도 근육의 NAD+ 농도 역시 운동으로 올라간다. 운동으로 NAD+가 늘면서 타우린 합성 반응이 더 활발해진 결과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생쥐와 붉은털원숭이 실험의 타우린 투여량을 사람으로 환산하면 하루 7~8g에 해당한다. 암컷 생쥐 실험에서는 투여량을 반으로 줄여도 여러 항목에서 꽤 효과가 있었다. 에너지 드링크 한 병에 들어있는 타우린이 1~2g이므로 매일 2~8병을 마시는 셈이다. 보통 어떤 성분의 효과를 보는 동물 실험은 사람에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을 쓰는데 타우린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드링크에는 당분도 꽤 들어있어 적어도 혈당 조절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고 여러 병을 마시면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 동물 실험 수준의 타우린을 섭취하려면 보충제 형태가 나을 것이다. 다만 논문에서는 이 정도 양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장기 투여 실험 결과가 없어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다고 발을 빼는 모습이다.


수년 전 NAD+ 부족이 노화의 동인이라는 논문을 읽고 한동안 전구물질 보충제를 먹다가 비용이 부담스러워 끊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여전히 꽤 비싸다. 반면 타우린은 가격이 수십 분의 1 수준이다. 생화학 교과서에 생체 분자 등장 빈도로 열 손가락 안에 들 NAD+에 비해 아예 나오지도 않는 타우린을 무시해온 나 자신을 반성하며 타우린 보충제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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