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침략자의 후안무치, 일제의 광기와 우리사회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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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5.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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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의 오만함과 과대망상의 교만함은 "우리사회 갑질"지독히 닮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狂氣
내부단속과 권력유지를 위해 침략과 전쟁을 일으키는 원흉들

21세기 첨단시대에 일본의 제국주의 부활을 바라보면 일본의 일관된 위기관리 체계가 읽힌다.
한민족 역사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긴 1592년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1904년 국권피탈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文)의 인생 궤적과 일본의 동북아시아 패권주의가 시사하는 현재의 정세는 함의하는 바가 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

KBS <임진왜란 1592>과 영화 <군함도>까지, 한반도 치욕의 역사에는 언제나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제국주의의 광적인 망상에 휩쌓일 때마다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했고, 그 후에는 언제나 그 전쟁의 정당화를 반복해왔다.  이들, 팽창주의 패권에 홀린 일본 수괴를 보면 현대 일본의 제국주의 열망과 광풍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변화와 위기21세기 지금의 일본, 광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왜란과 국권침탈, 일제수탈의 역사 과정 속에서 반복된 이러한 일본 수괴들의 오만한 판단과 나태한 과대망상은 한반도를 혼란에 빠뜨려 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열도 밖에서 위기의 해법을 찾아왔으며, 개인의 권력유지에 한반도침략을 철저히 이용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

<임진왜란 1592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식한 욕망의 노예로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풍신수길)는 일본전국시대의 하위계급 출신으로 정권을 잡아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며, 한민족과 일본의 적대적 전면전을 최초로 일으킨 수괴이다.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하인으로 들어가 측근 무관까지 승승장구했으며, 주군인 노부나가가 1581년 내란으로 혼노지에서 사망하자 전투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찬탈한다.  결국 주군과 그 일족을 배신하여 정권을 잡은 쿠데타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1592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신성분은 당시 일본 국계 상 '쇼군'이 될 수 없었으며, 현대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직위의 열등감이 정권 10년이라는 짧은 집권에 대륙을 정벌하겠다는 망상으로 확대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쇼군이 될 수 없었던 문맹 지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지함과대망상이 7년 전쟁, 2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에 보낸 공식 국서에서 태양의 아들을 자처하며 "대륙을 정복해 억만 년의 제국을 이어가겠다"는 허언증과 "조선 국토의 절반과 왕자를 볼모로 넘긴다"는 당시로서도 말도 안되는 강화 조건으로 무지함을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겼다.
결국 무지한 허언증과 과대망상의 수괴가 한국과 일본의 틀어진 역사의 시초가 된 것이다.

<임진왜란 1592 중 거북선>

치밀한 권력성애자이자 국권침탈의 기획 실행자,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文)는 안중근의사의 의거에 쓰러진 초대 조선 총독이며, 을사늑약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헌법초안을 지휘하고 초대 총리를 비롯, 네 번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일제시대 만행의 총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을미사변에 가담하고, 고종의 퇴위를 직접 종용하는 등 을사늑약에서 한일합방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역사의 유일한 식민지 시대를 역사에 남긴 일본 권력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하급무사의 양자가 되었으며, 영국 유학과 함께 개화파로 변신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 천황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차지했다.  일본의 근대화 시대, 개방 개혁정책으로 40대에 이미 총리대신에 올라 을사오적과 한반도 식민지화에 기초를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메이지 천황을 뒷배경으로 간교한 전략과 온건파를 가장한 비윤리적 정치술수로 철저히 권력지향형 정치인으로 생을 마쳤다.  그는 평생동안 총리대신과 추밀원의장, 조선통감 등 다수의 요직에 셀프 취임하며 구한말 동북아시아 정세를 주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간교하고 비윤리적인 자기합리화로 만들어진 오만한 국가관은 동북아공영의 근본이 된다.

<1984년까지 사용된 1,000엔 지폐의 이토 히로부미>

이렇듯, 허언증과대망상, 비윤리적 자기합리화에 의한 오만함으로 시작된 침략은 수 백만 우리민족의 희생을 낳았다.  중세 임진왜란과 근대 경술국치는 평행이론과 같이 흡사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은 전국시대의 마감이라는 <내적 변화>, 그리고 경술국치는 서구문명에 개화라는 <외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은 그 침략 야욕을 드러내 내부 단속의 권력유지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전쟁개시 후 상대방에 책임을 돌리는 발칙함은 언제나 반복되어 왔으며, 과대망상자기과신 역시 공통점이다.  열도 대지진의 위기와 장기 경제침체의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절명의 위기에 빠진 일본의 우경화가 좌시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그 한편으로 21세기, 여전히 침략의 폭력성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비단 미국의 트럼프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뉴스와 삶을 지배하는 갑질 세력은 히데요시와 히로부미를 무섭게 닮아 있지 않은가?

중소기업을 침략하고 당당하게 죽으라고 요구하는 대기업의 갑질, 공정위에 쌓여가는 이 사회 '을'들의 고발 속에 괘씸하다는 갑질세력의 과대망상은 또 어떠한가. 여전히 이 사회는 구한말 식민지적인 폭력성과 비윤리, 무지함이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 사드논란, 정치싸움, 검찰부패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사회 전반 뿐 아니라 그보다 일상적으로 갑질에 열을 올리는 후안무치한 과대망상, 허언증의 도요토미, 이토氏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NINA
NINA 맛집

자동자와 먹는 것 그리고 여행까지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