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물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

프로필

2007. 8. 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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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라틴문자표기: Ichiro Suzuki, 본명 : 鈴木 一郎(すずき いちろう, 1973 10 22 ~ )는 일본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토요야마쵸 출신의 메이저 리거. 우투좌타. 포지션은 외야수(우익수, 2006년 종반부터 중견수로 컨버트).

아이코다이메이덴고교 오릭스블루웨이브(1992 ~ 2000) 시애틀매리너스(2001~ )

부인은 전 TBS 아나운서인 후쿠시마 유미꼬. 한편, 이름은 이치로 이지만 (:일본에서는 첫째아들을 이치로 혹은 타로 라고 이름붙이는경우가 많다.) 차남이다. 참고로 형은 (패션 디자이너). 대리인은 토니 아타나시오.

  한편, 신장, 최중에 관해서는 공식 HP MLB.com 을 참고한 경우는 (신장:5’9” 체중 : 170lb)이며, 175cm, 77.1kg이다. 이치로 본인은 예전 프로야구 뉴스에 출현했을 때 「저는 키도 작아서, 176~177cm 정도」라고 에게 스스로 밝혔다.(다만 공식적으로 신장이 177cm 인 타구치 소우 보다도 훨씬 크다.) 한편, 일본프로야구재적최종해인 2000년의 프로필에는 신장 180cm, 체중 75kg 이였다. 다만 MLB 일본어공식 라이센스사이트 「MAJOR.JP」에서는 신장 180cm, 체중 77kg으로 되어 있다.

 

 

 

타이틀ㆍ수상ㆍ기록

 

일본프로야구(퍼시픽 리그)

-      MVP 3(1994 ~ 1996)

-      수위타자 7 (1994 ~ 2000)

-      타점왕 1(1995)

-      도루왕 1(1995)

-      최다안타 5(1994 ~ 1998)

-      최고출루율 5(1994 ~ 1996, 1999, 2000)

-      베스트 나인 7(1994 ~ 2000)

-      골든 글러브상 7(1994 ~ 2000)

-      월간 MVP 10(1994 68, 19956, 19968, 19976, 199867, 199957, 20007)

-      재팬 시리즈 우수선수상 1 (1996)

-      쇼리키마츠타로상 2 (1994, 1995)

-      올스타 출전 7(1994 ~ 2000)

-      시즌 210안타(1994)

-      시즌 69시합연속출루(1994)

-      20시합이상 연속안타 4(1994, 1999, 2000)

-      5연속전시합출장수위타자(1994 ~ 1998)

-      7년연속타율 .340이상수위타자(1994~2000)

-      시즌 맹타상 26(1996)

-      시즌 216타석 연속 무삼진(1997)

-      통산 1000안타 사상최속 달성 (1999 4 20 757시합째)

 

메이저 리그(아메리카 리그)

-      아메리카리그 신인왕(2001)

-      아메리카리그 MVP 1(2001)

-      수위타자 2 (2001, 2004)

-      도루왕 1 (2001)

-      실버 슬러거 상 1 (2001)

-      골든 글러브상 6 (2001 ~ 2006)

-      커미셔너 특별상(2005)

-      리그 신인 최고타율 : .350(2001)

-      한 시즌 최다안타시합 : 135(2001)

-      한 시즌 신인최다안타 : 242(2001)

-      한 시즌 신인최다타수 : 692(2001)

-      연속 4시즌 안타수 최다 : 924(2001 ~ 2004)

-      연속 5시즌 안타수 최다 : 1130(2001 ~ 2005)

-      연속 6시즌 안타수 최다 : 1354(2001 ~ 2006)

-      데뷰이래 6년 연속 200안타 (2001 ~ 2006)

-      한 시즌 최다안타 : 262(2004)

-      한 시즌 5안타시합 횟수 : 4(2004)

-      한 시즌 월간 50안타 횟수 : 3(2004)

-      한 시즌 최다단타 : 225(2004)

-      한 시즌 최다내야안타 : 57(2004)

-      어웨이 시합에서 시즌 최다안타 : 145(2004)

-      5년간 안타 1100개 이상 2(2001~2005, 2002~2006)

-      연속도루성공 : 45(리그기록)(2006)

-      리그 지구시리즈 최고타율 : .600(2001)

-      리그 지구시리즈 5시합최다안타타이:12(2001)

 

 

 

구단기록(시애틀매리너스)

-      통산타율 : .331

-      통산삼루타수 : 50

-      연속시합안타 : 25 (2007 5 7 ~ 2007 6 1)

-      선두타자홈런타수 : 22

-      한 시즌 타율 : .372(2004)

-      한 시즌 타수 : 704(2004) 역대 2

-      한 시즌 타석 : 762(2004) 역대 5

-      한 시즌 안타 : 262(2004) 역대 1

-      한 시즌 단타 : 225(2004) 역대 1

-      한 시즌 3루타 : 12(2005)

-      한 시즌 TOB(안타+사사구) 315(2004) 역대 58위 타이

-      한 시즌 고의사구 : 27 (2002) 역대 28위 타이

-      한 시즌 복수안타시합수 : 80 (2004)

-      신인최다득점 : 127(2001)

-      신인최다루타 : 316(201)

-      신인최다도루 : 56(2001)

-      신인연속시합안타 : 23(2001 4 22 ~ 2001 5 18)

-      1시합 사살수(중견수) : 11(2007 6 27)

  통산성적은 2006년 종료시

 

 

 

연도별 성적

 

-      2006년 시즌 종료시

-      굵은 글씨는 리그 1

※ 클릭 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리그별 통산 성적

 

 

 

경력

 

 

소년시절

-      아버지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소년시절의 이치로를 엄하게 훈련시켰다. 후일, 「우리들에게 있어서 즐거운 날들이였다」라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이치로 자신은 「아버지는 즐거웠다고 했지만 『거인의 별(일본의 유명한 야구만화)』 같이 자기에게 있어서는 힘들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교야구

-      아이코다이메이덴고교시절은 좌익수로서 여름 갑자원에, 또 투수로서 봄 갑자원에 출전. 각각 1회전에 상대팀에게 패배하였다. (대결한 두팀 모두 결승전 까지 진출했다.) 마쓰이 히데키가 있던 세이료 고교와의 연습시합에서 대전한적이 있다. 고교통산타율은 55, 고교통산홈런은 19개이다.

 

-      고교시절, 타자로서 평가 받고 있던중, 유일하게 투수로서 평가했던 연고지팀의 주니치 드래곤스의 스카우트도 시찰하기 위해 방문했었지만, 투수로서의 평가가 낮았기 때문에 획득을 놓치고 말았다.

 

-      고교당시의 야구부 나까무라감독에게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지 중앙으로 보낼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감독이 「신입생의 단순한 어필」 이라고 생각해 당시 3학년 투수 상대로 베팅 시켜보니 약 30개의 공중에 7할은 확실하게 공중심을 잡아내 직선 타구로 중앙으로 마구 쳐댔다. 나까무라 감독은 기숙사에 돌아가자 마자 부인에게 「이번에 들어온 콩나물 같은 녀석은 화성인이였어」라고 감상을 밝혔다고한다. 그 때문에 신입생ㆍ스즈키 이치로의 애칭은 화성인이 되었다.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기 때문에 니혼대학야구부로의 입학이 정해저있었다. 이치로도 첫 수위타자를 차지했던 해(1994)의 인터뷰에서「프로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니혼대학의 3학년」이라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

-      1991, 외야수로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드래프트 4위로 입단. (참고로 이때 1위가 현 세인트루이스 커디널스의 타구치 소오 선수이다.)

 

-      프로 1년차인 1992, 후래쉬 올스타 게임에 선발된 이치로는 그 올스타 전에서 대타 결승 홈런을 쳐 MVP를 획득. 상금 100만엔을 받았으나 전액을 고베시 양호시설에 기부한다. 2군선수로서 이러한 일을 한 것은 일본프로야구사상 처음 있던 일이였다.

 

-      1992년 웨스턴리그(일본 프로2군리그)에서 타율 .366의 고타율을 남겨 수위타자에 빛난다. 1992 7 11일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헤이와다이 야구장)에서 프로 첫줄전. 1993년에는 당시 강완의 명성을 날리던 노모 히데오선수(당시 긴테츠)로부터 프로 첫 홈런을 쳤지만, 감독의 지시를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그 직후에 2군으로 갈것을 명 받는다. 도이 감독과 오가와 토오루 코치로부터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에 대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한 결과, 「젊은 녀석이 결과만 요구한다」라고 비치게되어, 일군에 정착할수 없었다.

 

-      2군생활이 계속 되던 이치로였지만, 2년차의 가을에 도이감독이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이 된다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독을 따를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치로는 가와무라 켄이치로 2군타격코치와 함께 흔들추 타법을 단련하여 후일을 기약하였다. 나중에 도이는 이치로가 일본을 대표하는 타자가 되자 뻔뻔하게 이치로를 키운 것은 자기자신인듯이 말했지만, 당시 이치로는 이것을 부정하고 있다.

 

 

-      1993년 오프시즌에 하와이의 윈터리그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현 뉴욕 양키즈 제이슨 지암비와 함께 히로 스타즈에서 팀 메이트였다.

-      1994년 감독으로 초빙 되었던 오오기 아키라는 이치로의 타격센스를 알아보고 등록명을 당초의 스즈키 로부터 「이치로」로 변경 시켜 1군의 2번 타자로 발탁한다. 이치로는 1군 타격코치 아라이 히로마사도 알아보고 주전으로서 활약. 이후 1번타자로 정착하여, 일본신기록인 69시합 연속 출루, 일본야구계 사상 처음인 1시즌 200안타의 위업을 달성. 최정적으로 210안타(일본기록)까지 늘려 수위타자를 획득.또 이 해부터 타격부문 정식 타이틀이 된 최다안타 의 초대획득자가 되었다.

-      1995, 전반전을 3관왕으로 마무리했다. 최종적으로 홈런수는 코쿠보 히로키에게 역전되었지만, 종료시에는 수위타자, 타점왕, 도루왕, 최다안타, 최고출루율을 획득 「5관왕」. 승부에 강하다는 점, 파워도 증명 하였다. 또 당시의 퍼시픽 리그 신기록이였던 18개의 데드볼을 기록(현재는 퍼시픽 리그 기록은 2004년의 조지마 켄지가 기록한 22데드볼). 참고로 홈런왕 코쿠보는 28홈런, 이치로는 25홈런으로, 일본 야구ㆍ메이저리그 통틀어 전례가 없는 타격타이틀 독점에 한걸음 모자랐다.

-      1996 9 23, 니혼햄 파이터즈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에서 연장 10회말 오릭스의 리그 연패를 결정 짓는 끝내기 2루타를 쳐, 지난 해의 리그 우승시에 할수 없었던 「연고지 고베에서의 행가래」를 실현하였다. 게다가 재팬 시리즈 1차전에서는 연장 10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가와노 히로노부 투수로부터 오른쪽 스탠드에 결승홈런을 쳐, 팀은 한큐시대인 1977년 이후 19년 만의 일본 최고에 빛나게 되고, 이치로는 우수선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      1997 216타석 연속 무삼진인 일본기록을 수립. 이치로의 적은 삼진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려져있으며, 고교 3학년때의 삼진은 불과 3개이다.

-      2000 5 13일 롯데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1회말 타석에서 고토 토시유키가 던진 원 바운드 실투를 쳐내 우익수에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든다.

-      1994년부터 2000년 까지 7년 연속 수위타자 획득을 달성. 7번의 수위타자는 장훈 선수와 나란히 하는 일본 기록이였지만, 7년 연속 수위타자는 사상처음. 더욱이 1994년부터 1996년 까지 연속 MVP였으며, 3년 연속 MVP는 침의 대선배인 야마다 히사시 와 이치로 밖에 달성 못했다.



메이저 리그

-      2001, 이치로는 포스팅 제도를 이용하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마리너스로 이적한다. 메이저리그 이적에 관해서 본인은 2000년에 이적을 정해놓고 있었지만 은사인 고 오오기 아키라 감독으로부터 1년만 더 같이 하자」라고 부탁을 받아, 거절하지 못하고 팀에 남았다고 한다. 당초는 일본인 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통용할지, 또 선이 앏은 이미지(근육이 붙어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야구선수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고한다)의 이치로에게 전 시즌 출장 할 수 있는 스태미나가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과 목소리가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나왔다. 그러나 개막전부터 멀티히트를 때려내고, 이후에도 안타를 계속 생산해냈다. 이 해에 1939년의 빌 테리 (자이언츠) 이래(신인기록으로는 죠 잭슨이래) 가 되는 한시즌 242안타(역대9)를 기록하여, 메이저 리그 신인 최다안타기록을 갱신과 더불어 아메리칸리그의 신인상ㆍMVPㆍ수위타자ㆍ도루왕에 빛난다. 수위타자와 도루왕을 동시에 획득한 것은 1949년 제키 로빈슨이래, 신인으로 아메리칸리그의 타격 부문을 차지한 것은 아부너 달린풀(19세기의 기록), 1964년 미네소타트윈즈의 토니 올리버 이래의 3명째, 안타시합수 135시합은 웨이드 복스 등 4명과 나란히 하는 기록타이, 또 타수 692는 아메리칸 리그 신인기록이였다. 한편, 신인왕과 MVP에 동시에 선출되었던 선수는 이치로 외에 1975년 프레드 린 뿐이며, 신인왕과 타격타이틀의 동시수상은 토니 올리버(수위타자), 젝키 로빈슨, 빈스 콜먼(도루왕), 월트 드루퍼(타점왕), 마크 맥과이어(홈런왕) 이래 6명째. 당시 이치로의 안타수가 200을 넘어선 지점부터 언론에서는 「루키 최다안타기록」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리그기구가 1947년에 제정한 루키 자격을 바탕으로 과거의 타격 기록을 재조사하였다. 그 결과, 당초 1927년의 로이드 웨이너의 「223안타」라고 생각되던 신인 안타수 기록이, 1911년의 슈레스죠 잭슨 이 기록한 「233안타」로 정정 되는 사태도 일어난다. 또 신인왕, MVP,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슬러거상,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손에 넣은 것은 메이저리그 사상 이치로 뿐만이다. 이와 같은 기록적인 활약으로 팀의 플레이 오프 진출에 공헌, 일본의 1류타자(야수)가 메이저 리그에서도 통용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 하였다.

-      2003 5월에는 메이저 통산 500안타를 달성

-      2004년에는 84년간 깨지지 않았던 죠지 시슬러의 257안타를 5개 앞서는 262안타와 함께 타율 .372를 기록하여 메이저에서는 3년만에 2번째 수위타자에도 오른다. 이 기록은 안팍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미국에서는 많은 신문사에서 그 위업을 칭송하는 기사가 기재되어 USA TODAY 지에도 배리 본즈선수가 709호 홈런을 치던 때 이래의 전면 광고로 메이저리그가 축복의 뜻을 표하고, 미국 야구의 명예의 전당에서는 특별 부스가 준비되었다. (우측사진참조). 일본에서는 2번째의 국민 영예상을 수여를 타진(두 번 다 본인이 사퇴)되어, 아시아의 여러나라와 야구에 관심이 적은 영국에서마저도 이례적으로 신문등 언론에서 그 기록달성은 언급하였다. 시즌 최다 안타 때문에 그늘에 가려저 있지만 7월에 시즌 2번째의 월간 50개안타를 달성, 죠 메드윅 이래 68년 만의 쾌거를 달성했다. 8월에 구단 기록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월간 54안타를 갱신하여, 68년만에 로이 웨즐리의 월간 56안타 타이 기록를 이루었지만, 월간 67안타의 타이 캅 기록에는 다다를수 없었다. 참고로 정식 기록이진 않치만 2004 7 28~8 17일동안 안타를 67개를 쳤다. 통산 4번째의 월간 50안타는 피터 로즈와 함께(메이저 기록은 조지 시슬러의 10), 이 외에 2개월 연속 50개 안타 와 시즌 3번의 월간 50안타의 기록을 갱신하였다. 게다가 9월에 빌 테리의 연속 4시즌 918안타도 갱신하였다.

-      2005 4 22, 메이저리그의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84년 만의 시즌 최다안타기록을 갱신한 이치로에 대해서 Commissioner’s Historic Achievement Award(커미셔너 특별표창)을 보내, 시애틀의 세이코 필드에서 행해진 수상 세레모니에서 이치로의 위업을 축하했다. (이치로의 영어 스피치 번역)「이와 같은 상을 받을수 있어서 매우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시애틀 팬 앞에서 세이코 필드에서 조지 시슬러의 기록을 깬깬 것 제 야구 경력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였습니다. 우선 처음에 조지 시슬러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 최고의 순간을 체험할수 있었던 것도 그의 훌륭한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커미셔너 특별표창은 메이저 리그에 있어서 역사적위업을 달성한 선수-팀에게 대해 메이저 리그의 최고 책임자인 커미셔너 스스로가 그 위업을 칭송하는 세레모니로 이치로 이외에도 토니 그윈, 리키 헨더슨,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칼립켄 Jr, 로저 클래멘스, 배리 본즈, 레이첼 로빈슨(고 잭키 로빈슨부인),로베르트 클레멘테, 팀으로서는 2001년의 시애틀 매리너스가 수상하였다. 2005년에는 일본인 선수로처 첫 메이저리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하였다. 이것은 출장 696시합째에 달성했으며, 1933년의 척 클래인(683시합), 1932년 로이드 웨이너(686시합)에 이은 사상 3번째의 빠른 기록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사상 최속 757시합으로 1000안타를 달성했다). 6년 연속 100득점 30도루는 조 모간에 이어 2번째. 5년 연속 200안타라고 하는 기록도 달성했다. 데뷰로부터라면 사상 처음이지만 「데뷰로부터」라고하는 주석이 붙지 않는다면 1900년 이후의 근대 야구에서는 3명째이다. 연속기록으로는 사상 처음이지만, 5번째 200안타 100득점 30도루는 구성 타이러스 콥 이래 89년만의 쾌거를 이루었다. 또 척 클래인의 연속 5시즌 통산 1118안타를 앞섰지만, 조지 시슬러의 5시즌 통산 1137안타는 기록달성을 눈앞에 두고 깰수가 없었다. (조지 시슬러는 눈병으로 1시즌을 전체를 빠졌기 때문에 연속 기록이 아니다.)

-      2006 5 7일에 메이저 통산 200도루를 달성, 그 다음날에는 미일통산400도루도 달성. 게다가 20시합 연속 안타를 미일통산이었지만 8번 달성하였다. 최고기록은 피터 로즈의 7(19세기의 기록은 윌리엄 킬러의 8) 6월에는 미일 통산 2500안타를 달성. 7 26일에는 2차대전이후 최다가 되는 웨이드 보그스의 연속 6시즌 통산 1274안타를 앞섰다. 7 28일에는 일본시절 1278안타를 넘어섰다. 8 16일에는 로저스 혼스비가 갖고 있는 연속 6시즌 최다안타 1296안타를 넘어섰다. 8 29일에는 메이저 통산 400 멀티히트를 928시합째에서 달성. 이것은 6년차로서는 메이저 최속. 또 이날 20번째 선두타자홈런을 쳤다.  9 5일에는 윌리엄 킬러가 갖고 있는 6시즌 최다안타 1313(19세기 기록)을 깬다. 9 7일에는 캔저스시티 로열즈전에서 200안타를 달성하여, 5년 연속 을 6연속으로 늘렸다. 메이저리그 사상 3번째이다. 한편 이치로는 이 시합에서 3도루를 성공하여 33연속 도루 성공, 윌리 윌슨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 리그 기록을 갱신하였다. 또 만 33가 되는 이날 이 시즌에 자기의 3번째 기록이 되는 45도루를 기록. 그러나 빈센트 콜먼의 한시즌 메이저 기록인 44연속 도루성공에는 이르지 못했다. 메이저 통산 100고의사구로 미일 통산 200개 고의 사구도 도달되었다.

-      2007 5 3 (한국시간 4) 41연속 도루성공을 달성하여, 시즌에 걸쳐서 아메리칸 리그 연속 도루성공 기록을 갱신 (종래의 기록은 팀 레인즈의 40) 5 16 (한국시간 17)에는 아메리칸 리그 기록을 45로 늘렸다. 5 18(한국시간) 대 엔젤스 전의 종반 3점 뒤쳐지는 가운데 히트 앤 런 사인이 나왔으나 2번 타자인 호세 비도로가 사인을 보지 못해 히트 앤 런을 실패. 이것이 도루사 취급되어, 이치로의 아메리카 리그 연속 도루성공기록은 「45」 에서 스톱했다. 내셔널리그의 빈스 콜먼(커디널스)의 연속 도루 성공 50의 대기록 갱신은 할수 없었다. 5 24일에는 메이저 통산 1000시합을 달성. 100시합에서 1414개안타는 알 시몬스(1443안타)에 이어 2번째로 많다. 7 7일에는 웨이드 보그스가 갖고있는 연속 7시즌 2차대전이후 최대안타 1479안타를 넘어섰다. 7 18일에는 메이저 통산 400타점을 달성. 동시에 빌 테리가 갖고 있던 연속 7시즌 최다안타 1487개의 타이기록을 이루었다. 7 29일에는 메이저 통산 1500안타를 달성 1060시합에서 도달은 알 시몬스(1040시합), 조지 시슬러(1048시합)에 이어 3위이다.

-      2007 7 13(현지시간) 매리너스와 5 1억달러(5 8500만달라 + 계약보너스 500만달러 + 인센티브 1000만달러) 2012년 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발표하였다.

 

 

 

 

올스타 경기

-      2001년 팬투표에서는 337만표를 획득하여, 일본에서 받은 68만표를 빼도 양 리그 통틀어 1위가 된다. 타자로서는 일본인 최초였다.

-      2002 2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양리그 최다득표.

-      2003 3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양리그 최다득표. 3년 연속은 켄그리피 주니어 이래 2명째의 쾌거

-      2004 4년 연속 출장

-      2005년 처음으로 팬투표 선발을 놓쳤지만, 선수간 투표에서 1위가 되어 시합에서는 적시타를 올려 일본인으로서는 올스타 첫 타점을 기록했다.

-      2006 6년 연속 출장

-      2007년 팬투표에서 외야수부문 3위가 되어 7년 연속 출장. 올스타 게임 사상 첫 러닝홈런을 기록. 역전의 안타가 되었다.(3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

-      이는 MLB올스타 게임에서 일본인 첫 홈런이다. 이 활약이 인정되어 일본인으로서도 아시아인으로서도 최초가 되는 MVP에 선출되었다. 이 시합에서 이치로가 썼던 모자와 러닝 홈런 볼은 미국 야구의 전당에 기증되었다. MVP에 뽑 혔을때의 인터뷰에서는 「펜스를 넘지 못한 홈런이 되어서 쇼크였어요.」라고 말했으며(사실 전날 타격연습에서 구장 옆의 맥코비 코브에 입수시키는 타구를 날렸었다.) 또 시합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해놓고 있어서 시합이 끝나면 바로 갈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MVP에 뽑힐지 모른다」라고 전해 들어 못갔다고 말했다.

 

 

 

 

세계대회

-      올림픽등으로의 참가를 거부해왔으며 세계대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참가에 대해 놀란 팬도 적지 않다. 이는 「올림픽은 어떻게든 아마추어 대회로 제 자신은 프로」라는 생각에 따른다고 한다. 또 항상 팀 플레이 보다 개인 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최종적인 결과에 연결된다고 발언해왔었지만, WBC일본대표에서는 팀 플레이를 우선시 하자고 발언하는 부분도 있으며, 팀 주장으로서 솔선하여 행동, 밝고 명랑한 모습은 오해 받았던 종래의 이미지를 바꾸어 화제가 되었다.

-      이치로가 WBC로의 포부로서 말한 「이번 WBC 에서 싸울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에 이길수 없겠군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이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특정 나라를 지정해서 한 말이 아닌 발언이 한국을 대상으로 한 발언으로 언급되어 과민하게 반응한 한국 언론 일부에서 일본원숭이로 형용되기도 했고, 데드볼을 맞는 모습을 비꼰듯한 모습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또는 「이치로」라는 음이 한국어로 「입치료」를 의미하는 점에서 WBC 본선에서는 「이치로는 입치료가 필요」라고 하는 플랜 카드를 사용하기도 하는등 지나친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또 재일한국인로 부터도 비판도 일부 보였다.(야구해설자 장훈은 아직도 이치로 비하발언을 TBS 방송에서 당연한 듯이 계속하고 있다.) 이치로 본인은 「야유소리가 크수록 불타오른다」라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은듯하다.

-      WBC에서는 한국팀에게 2연패를한다. 2패때 이치로는 시합후에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였다.」라고 코멘트하고 있다. 이 발언을 들은 오오하시 쿄센은 『주간 겐다이』연재 「내유외환(內遊外歡)」제582회에서 인종차별발언이라며 비판하였고, 게다가 제584회에서는 「『굴욕이라면 자기 구단(마리너스) 2년 연속 최하위 인 쪽이 더 굴욕적이 아닌지』라며 왜 질문을 던지지 않았는가?」라며 기자들도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이자와 모토히코는 『SAPIO5 10일호에서 「오오하시 쿄센님은 저를 「거짓말쟁이」, 이치로 발언을 「인종차별」이라고 말한 것은 경솔했습니다. 비겁한것은 존재하지 않는 차별발언을 만들어 낸 한국 언론들 쪽에 있다.」라며 반론(, 이치로의 「굴욕적」발언을 「저런 비겁한 방법을 쓰고 매너도 최악인 팀에게 지다니」라는 의미였다고 주장 하였지만, 물론 이것은 이자와의 발언으로 이치로가 한국을 최악이라고 공언한 것은 아니다.) 3번째 시합이 되었던 준결승에서 일본은 한국을 이기고, 이치로 자신도 시합을 굳히는 적시타를 올렸다. 시합후에는 「오늘 지면 일본 프로야구사의 오점을 남길뻔 했다.」「이겨야 하는 팀이 이겨서 다행이다」라고 발언했다.

 

 

 

선수로서의 특징

 

타격론과 폼의 변경

발빠른 좌타자로서 스윙으로부터 달리기 시작하기까지의 동작이 매우 빠르고, 다른 선수면 안타를 올릴 수 없는 타구라도 안타가 되는 경우가 많다. 2004년의 내야 안타수는 59개로 메이저 양 리그 1위이다. 밀어서든 당겨서든 어느쪽 으로든 보낼수 있는 배팅이 가능하며, 내야안타가 되기 쉽게 내려 찍는 배팅도 특징적이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타석이 끝난다. 이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다」라고 말하는등 독자적인 미학을 갖고 있으며, 4구를 고르기 보다는 자기가 칠 수 있는 히트 존을 넓혀 안타수를 늘릴려고 하기 때문에 삼진도 4구도 적다. 이 때문에 2005년에는 연간최다안타기록을 갱신했던 다음해였던 만큼, 타율 4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New York Times 지에서는 이러한 이치로의 자세로는 4할 대 달성은 무리이며, 오히려 조 디마지오가 갖고 있는 56시합 연속 안타기록을 갱신하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4구가 적은 만큼 출루율이  1번 타자로서는 낮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많치만, 2001 2002 2004 MLB전체의 규정 타석 도달 1번 타자중에는 1위였으며 (2006년에는 1위와 4리차로 4), 특히 2004년에는 MLB 전체에서 9,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1위와 5리 차의 2위 반대로 1번 타자중에서는 출루율이 높은 편이다.

타격성적에서 볼때는 장타율이 낮고 홈런이 적기 때문에 타자로서는 소총수로 보이기 쉽다. 홈런수는 역대 실버 슬러거 수상자중에서 가장 적은 부류에 들어간다. 그러나 장타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합에서 장타를 노리지 않고 안타를 만들어 내는데에 전념하고 있는 결과라고 말할수 있따. 홈런에 관해서는 일본 시절에 연간 25홈런을 친 실적이 있으며, 일본 야구계에서의 장타가 많은점,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중 약 3분의 1이 『선두타자 홈런』에 치우쳐 있는 점, 본인도 메이저리그 이적후에 「전타석 홈런을 노린다면 40개는 무리지만 30개는 칠 수 있다」라고 발언한점, 한때 마리너스 감독이였던 밥 멜빈이 위의 발언의 반론으로서 「이치로의 (시합전) 타격연습을 한 번 봐봐. 엄청나게(홈런을) 쳐낸다고.」라고 증언 하고 있는 점등 장타를 노리지 않는 타법을 어느 정도 뒷받침 하는 사실을 몇 점 들수 있다.

1996년정도부터 타석에 들어가면 베트를 세워서 자세를 잡는 독특한 포즈를 반드시 하게 되었다. (사진 참조) 이이것 어렸을 때 열열한 팬이였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오야스시 신수(현 해설자)의 영향이라고 한다. 또 그 포즈로 눈의 초점을 스코어 보드에 맞춘 다음 베트로 초점을 바꿈으로서 볼에대한 동체시력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 팀메이트인 존 올로드는 2001년에 이치로의 타격에 대해서 5가지의 타격방법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1번째는 런닝 원 핸더 (반달리면서 한쪽손으로 친다), 두번째는 더 리너(볼에 접근하면서 친다) 3번째는 피스트커프 스윙(깍는듯이 밀어친다) 4번째는 칩 스윙(골프의 칩샷과 같이 친다) 5번째는 파워 스윙(힘으로 당기는 베팅) 가 있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 치는 방법을 나누어 놨으며, 한때 본인이 홈런은 노리고 치는 것이라고 말하던 부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치로의 타격폼은 데뷰 이래 시즌중에 있어도 항상 변화하고 있었으며, 2000년 후반부터는 그때까지 말하던 흔들타법과 다른 다리를 올리지 않는 폼으로 바꿔, 2005년 부터는 다리를 올리는 법이 틀리지만, 다시 하이킥을 이용한 타법으로 변화 했다(사진참조). 현재는 노모로부터 프로 첫 홈런을 때린 시절의 변칙 외발타법이 되어있다.

 

 

수비면

준족으로 수비 범위가 넓으며, 2006년에 선수가 뽑는 강한 어깨를 가진 외야 선수로서 48%를 차지할정도로 강한 어깨와 그 정확한 송구 때문에, 송구는 레이저 빔으로 불리는 등(마리너스 전속 아나운서 릭 리즈의 실황에서 : 이 표현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며, 스포츠 뉴스에서는 정착해가고 있다.) 다른 구단으로부터는 가장 터치업으로 진루하기 힘든 외야수로서 취급받고 있다. 2007년 구단 광고에서는 이 송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만들어져 미국 북서부 TV(특히 FOX Sports Net:FSN)에서 방영되고 있다. 또 이것과 더불어 높은 운동 능력을 살린 파인 플레이도 있으며 보통때면 안타성의 타구도 아웃이 되기도 하고 희생플라이가 외야 플라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이치로가 지키는 오윅을 또는 그 등번호와 초자연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되어 있는 네바다 주 미군 비밀지구에 대입시켜 Area51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수비는 메이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골든 글러브 상을 2001– 2006 6년 연속 수상하고 있다.

 

 

주루면

1995년 과 2001년에 최다도루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메이저 에서는 매년 30도루 이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그렇게 까지 도루수를 늘리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코멘트가 많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2006년쯤 부터는 퀵모션의 불충분한 상대 투수를 선택하여 도루하는등 성공율이 높은 스타일이다.

 

 

 

인물ㆍ에피소드

 

-      보통 언론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는 않지만, 이는 팬을 경시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토이 시게사토와의 대담에서는 「나는 시합 후에 그 날 경기에 대해서 말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말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히는 할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또 「오프시즌이 되고 나서는 『이치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대로 오프의 특별방송이나 롱 인터뷰 등에는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      또 동대담중에 「일시적인 주목이 아니라, 몇 년씩 제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과는 앞으로도 평생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데뷰3년차부터 イチロー이였지만, 메이저에서의 등록명은 풀 네임인 “Ichiro Suzuki” 로 되어있다. 다만 유니폼에 쓰여져있는 것은 통상적인 성이 아니라 이름(First name) 으로 쓰여져있다.(오른쪽사진 참조).

-      이치로는 소년 시절, 매일 아버지와 베팅 센터에서 연습을 했다. 베팅센터에서는 타석의 가장 앞에 서서, 140km의 공을 때려내는 연습을 해왔다. 프로가 되고 시즌 오프에 고교시절의 친구 몇사람과 만났을 때 어릴적에 연습했던 베팅 센터에 들릴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은 이치로에게 「어릴 때 처럼 타석 맨앞에 서서  140km 공을 한번 쳐봐」라고 부탁하자 이치로는 흔쾌히 허락하여 타석의 맨앞에 섰지만, 프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헛스윙을 연발하고, 「잘도 어릴적 나는 이런걸 쳐냈군」이라며 중얼 거렸다.

-      오릭스 시절의 1996년의 올스타 전 9회에 이치로는 고교시절 투수였던 점에서 오오기 감독이 마쓰이 히데키(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때에 투수로서 기용했다. 거기서 센트럴리그 감독이였던 노무라 감독은 마쓰이에게 「어떻할꺼야?」라고 물어보자, 마쓰이가 「좀 봐주세요」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대타 타카츠 신고(당시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보내 결과는 타카츠의 유격수 앞 땅볼로 맞춰잡아 이치로가 승리하였다. 노무라는 올스타 무대에서 본래 투수가 아닌 이치로를 등판 시킨 것은 상대 타자에게 있어 최대의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후일 노무라 감독은 이치로의 투수기용에 대해서 「너무 심한 장난」이라고 코멘트 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 노무라감독은 신조 츠요시를 투수로서 컨버트 시켰다) 이 일에 대해서 이치로는 「9 2사 타자는 마쓰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투수가 대타로 나왔다. 맥이 빠져버려서 완전히 식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이치로는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는게 꿈이라고 몇번이가 밝히고 있으며, 속구도 한때 T.V 방송 중 마운드에서 투구를 계측해본 결과 146km 였다. 그다지 알려져있지는 않치만 1995년 퍼시픽리그 동서대항전에서 이치로가 마운드에 오른적이 있다. 이때 당시 니혼햄 파이터즈의 히로세 테츠로를 투수앞 땅볼로 잡았다. 히로세에 의하면, 원래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의 키요하라 카즈히로가 타석에 들어갈 예정이였지만, 키요하라가 히로세에게 「내가 타석에 들어갔다가 삼진이라도 당하면 어떻해. 히로세씨 부탁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      편식가로서도 유명하다. 도신시절에는 거의 야채는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매일 단골 고기집에서 고기만 먹었다고 한다. 결혼후에는 유미꼬 부인이 조리방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야채도 먹을수 있게 되었다.(최근에는 본인의 건강관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점도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다쿠앙이며, 어릴적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노랗게 되어 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다고 한다.

-      젊은 시절은 지금과 달리 오히려 언론에 대해 호의 적으로 버라이어티 방송에도 자주 출연 하였고, 밝게 얘기도 하고 했지만 나가타니 오사무가 제대로 된 취재를 바탕으로 하는 기사가 아닌 자기 마음대로 식의 기사를 써 발표한 것을 계기로 급변하여, 이후에는 신뢰할수 있는 기자나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기자이외에는 차갑게 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치로의 이러한 기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태도에는 적지 않은 비판이 있지만 워낙 뛰어난 실적 때문에 표면에 나타나는 비판은 없다. 석간후지의 에지리 요시후미만은 그의 이러한 스타일을 오치아이(현 주니치감독)의 영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기자는 대표적인 안티 오치아이로 유명하다)

-      눈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 화면 자체를 보지 않는다. 자신의 웹사이트 블로그도 갖고있지 않다. 메일도 부인 유미꼬에게 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TT서일본의 광고에서는 PC를 통해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      메이저리그로의 이적할때까지 주민표(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를 옮기지 않고 나고 자란 토야마 쵸에 납세하고 있었다.

-      친척이 닛산자동차 관련 회사에 근무하고 있던 관계로 1995년에 「이치로 닛산」캠페인 광고에 출연 하였다. 사생활에서도 마치, 시마등 닛산 차를 애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 2006년에는 오랜만에 닛산 광고에 출연했다(스카이 라인).

-      2006년의 WBC이후로는, 유니폼의 바지끝을 올려, 스타킹이 보이는 「클래식 스타일」로 바꾸었다. 이것으로 발에 신경쓰이던 부분이 줄어들었다 라고 이치로 본인은 말하고 있다. 또 이 스타일은 2005년부터 생각했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WBC가 좋은 계기가 되어 이 스타일로 바꾸었다라고 발언하고 있다.

-      애견의 이름은 잇큐(一弓)라고 부른다. 견종은 시바견. 이치로의 과 부인의 를 합친것이라고

-      세차를 좋아하며, 한때 분재와 바둑이 취미라고 대답했었다.

-      오프시즌에는 패션 잡지의 모델을 한적도 있다. 2006 4 28일 일본에서 발매된 프랑스 최고급 패션지 『로피쉘』일본판 6월호에서는 머리를 은색으로 염색하고 등장하였다. 또 미국의 패션지「GQ」에서는 4페이지에 걸쳐 특집으로 꾸며졌다.

-      2007 3 12일 머리를 밀었다. 동료 라울 이바네즈 외야수로부터 「브래드 피트 같군」이라는 평을 들었다.

-      THE BLUE HEARTS의 팬이며 2004년 안타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시합을 향하는 차 속에서 「未来らの(미래는 우리들의 손의 속에)」를 들었었다. 2007년 현재 본거지 세이프코필드에서 등장곡은 야자와 에이키치의 まらないHa~Ha의 인트로.

-      Mr.Childern의 팬이기도 하다. TV와 잡지등의 인터뷰에 있어서 연습중과 욕실에서 자주 듣는다라고 발언. 존경하는 인물로서는 사쿠라이 카즈토시를 그 중 한 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      싱어송 라이터인 시이나 링고는 자기가 작사한 『슈퍼스타』의 노래에 대해서 이치로의 이미지를 차용해 제작했다고 발언했다.

-      체지방율은 6%전후에 불과하다.

-      나고야공항 근처에 있는 이치로의 본래집(어렸을 때 부터산) 문패에는 「SUZUKI」라고 금속제품에 쓰여져 있는것과 함께 이치로의 타격폼이 실루엣으로 그려져있다.

-      2007 7 28일 애슬래틱 전에 잇어 8회 투수교체 때 중앙에서 이치로와 라울 이바니에스가 담소중에 한 팬이 펜스를 넘어 말에 끼어들었다. 경비원이 달려오자 그 팬은 저항하진않았지만 이치로에게 허그를 원하자 이치로는 팬서비스를 생각해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이에 응했다.

-      이치로 저택에는 오릭스 시절에 존경하던 고 오오기김독이 자기 시합을 보러왔을 때를 배려하여 호텔에서 묵지 않도록 전용 숙박용 방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사용한적이 없다.

 

 

 

약력

 

-      1990년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좌익수로서 출전 1회전 탈락(대 텐리 전)

-      1991년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에서 투수로 출전. 1회전 탈락 (대 마츠쇼 학원 전)

-      1992년 드래프트 4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에 입단

-      1992년 주니어 올스타 게임에서 최우수선수상(100만엔)   획득

-      1994년 등록명을 「이치로」로 변경. 일본프로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200안타 달성. 최종적으로는 210안타를 기록

-      1994 ~ 2000년 퍼시픽리그 수위타자를 획득. 7년 연속은 일본 기록.

-      2000년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하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마리너스으로  이적

-      2001년 아메리카 리그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 슬러거상, 골든 글러브상, 신인상, MVP획득(신인상 이외 모두 일본인 첫). 시애틀 마리너스의 한시즌 116승의 신기록으로 지구 우승에 공헌함. 팀 첫 Commissioner’s Historic Achievement Award(커미셔너 특별표창)을 수여받음. 일본문학진흥회로부터 키쿠치칸 상을 수상.

-      2004 5 21(현지시간) 미일통산 2000안타 달성.

-      2004 8 26(현지시간) 메이저 사상 첫 입단년도로부터 4년 연속 200안타 달성.

-      2004 9 2(현지시간) 일본인 야수사상 첫 아메리카 리그 월간 MVP 야수부문에 선출.

-      2004 10 1 (현지시간) 조지 시슬러의 메이저리그 연간 최다안타기록(257안타) 84년 만에 갱신하는 258안타를 달성.

-      2004년 메이저 사상 최고기록인 연간 262안타로 2004년 시즌 종료. 타율 .372 3년만에 2번째 아메리카 리그 수위타자를 획득. 그 외에는 2번째의 리그 최다 경원, Commissioner’s Historic Achievement Award(커미셔너 특별표창)을 받는다. 현역선수라는 이유로 국민영예상은 사퇴(2번째 타진)

-      2005 6 14(현지시간) 메이저 사상 3번째 빠르기로 1000안타 달성

-      2005 11 5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수상

-      2006 9 17일 사상 3번째로 6년 연속 200안타 달성

-      2006 3번째의 최다안타를 기록

-      2006 11 3 6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 수상.

-      2007 7 10(현지시간) MLB올스타 게임 MVP(올스타 게임 사상 첫 런닝홈런을 포함 3안타 2타점)

 

 

 

 

드라마 출연

 

-      2006년 신정 방송인 미스터리 드라마 후루하타 닌자부로(3일간 연속방송의 시리즈 완결편 제 2)에 주인공 후루하타와 대결하는 범인역「시애틀 마리너스의 이치로」로서 출연했다.(갤러리는 후루하타 닌자부로 DVD-BOX). 지금까지의 후루하타 작품에서 범인역으로 본인이 직접 연기한 것은 SMAP 이외에는 없다. 본인도 후루하타 닌자부로 시리즈의 상당한 팬이라고 공언하고 있었으며 프로듀서와 생각을 같이 했기 때문에 출연에 이르렀다고 한다. 실은 본래, 각본가 미타니 코오키의 각본에서는 이치로를 연기하는 역할이 『하치로』였지만, 이치로 본인이 「자신을 연기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급거 『이치로』가 되었다. 그의 연기에 관해서도 촬영을 할 때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NG는 거의 없었다고 하며, 주연인 타무라 마사카즈는 「연기자들의 본보기」라고 까지 평가했다. 시청률은 27% 12년 계속된 시리즈 중에서는 7번째로 높았다.

-      이치로가 팀의 공식 잡지 Mariners에서 언급한것에 따르면, 2004년에 최다안타를 기록을 달성한 오프 시즌에 처음으로 야구이외에 다른 것을 뭔가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2005년의 봄 캠프를 맞이하기 직전 2월에 고베 호텔에서 처음으로 각본을 읽었으며, 본인의 이야기로는 농담반 진담 반으로 어설픈 연기로 관계자들에게 눈에 띄어 그냥 에피소드로 끝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촬영 현장에서 go 사인이 나오자 방송 수준을 생각해서 상당히 긴장했다고 한다. 시즌 종료후의 10월에 도쿄 돔의 주차장에서 촬영 개시. 지금까지 해본적이 없는 세계에서 그 세계의 일류 연기자들과 공연하여, 정말 자신이 방송 수준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고 한다. 또 후일 인터뷰에서 수비를 보면서 대사를 연습하고 있던 일이나 2005년 시즌의 성적이 다른 해에 비해 떨어져 있는 것을 「대사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고 있다.

-      이치로는 예전에도 「달려라! 이치로」(2001년 감독 오오모리 카즈키) 에서 본인 역으로 영화 출연을 하고 있었지만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대사를 말하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였다.

 

 

 

 

 

 

 

 

 

참고 : http://ja.wikipedia.org/wiki/%E3%82%A4%E3%83%81%E3%83%AD%E3%83%BC

 

위키페디아 Japan - イチロー

번역 by 먼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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