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깍두기, 루저로 전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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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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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이게 뭘까? 이거?

 

깍두기는 맞지만, 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글에서 말하고 싶은 깍두기는 사람을 지칭할때 쓰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깍두기는 '어디에도 끼지못하는 사람 혹은 신세'를 말한다고...

깍두기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사람이니

어디서든지 외부인이다.

소외된자이며, 경계인이라고 말해도 될 듯.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슬픈 존재이다.

 

그러나 깍두기는 슬프지도 외롭지만은 않다.

깍두기가 캔디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사람이 깍두기와 함께 사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동네에서,

깍두기로 지칭되는 아이는

대개 놀이에 방해가 되는 아이였다.

물론, 언니들과 놀때 나는 영락없이 깍두기였다.

 

아이들이 놀때 편을 가르는 일이 종종 있다.

이때, 편을 가른 후 사람이 남을때,

너무 어려서 편으로 들어가기 어려울때

혹은, 몸이 아픈 아이가 있을때 그들을 깍두기로 만든다.

 

한마디로 말해서, 처치 곤란한 존재이거나

놀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지칭한다.

지금의 말로 하면 루저하고나 할까?

그런데 골목에서의 놀이는 사람을 버리지않는다.

 

깍두기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지만,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말타기를 한다고 보면,

양쪽이 술래가 되어 서로 말이 되지만,

깍두기는 이쪽에서도 말을 타고

다른쪽에서도 말을 타게 된다.

양쪽에서 다 뛴다.

때론 깍두기가 더 좋은 위치에 선다.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참여하고, 양편의 숫자도 맞출 수있게 된다.

물론 깍두기는 놀이에 탁월한 아이가 아니므로

놀이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막상 깍두기가 놀라운 존재감을 발휘하여 성패에 영향을 미치면,

창의적으로 룰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깍두기는 다 먹어치운 듯하다.

 

이제,

어느 팀에도 끼지못하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은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배려받으면서 함께 놀 수있었던 깍두기는

이제 혹독한 루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루저.

영어 단어 Loser에서 왔다.

영어 단어의 뜻은 패배자라는 뜻인데...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쓰일까?

 

종종 영어단어의 본뜻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재의미화된 단어들도 있다.

예컨대 외국에서 주먹쥐고 "fighting"하면 싸우자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힘내자 아자아자!"의 뜻으로 변화한 것도 있지않은가?

 

그러나 루저는 미녀들의 수다에서 불쑥 명명된 이래,

우리사회에 내재된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루저는 경쟁에서의 낙오자, 키가 작은 사람, 못생긴 사람, 뚱뚱한 사람, 스펙이 떨어지는 사람...

한마디로, 어느 역사,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부족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과거 루저는 깍두기로 배려받고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갔지만,

오늘날에는 명명되는 순간,

좌절감과 위축감에 더욱 열등해지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의 경쟁구도는 깍두기를 먹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가급적 더 많은 깍두기를 만들어내고 루저로 명명함으로써

자신의 경쟁자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경쟁사회, 고도의 경쟁사회는

깍두기를 세우고, 함게 살고, 노는 미덕을 발휘하기에 너무 거칠다.

그래서 사는게 힙겹고,

모든사람들이 상대적인 루저로서의 열등감에 고통스러워한다.

 

언제나 루저이거나,

어떤 자리에서 루저가 되는 이땅의 모든 루저들이여!

깍두기로 살았던 나달의 아름다움을 기억하자.

 

그리고 깍두기를 인정하는 사회로의 복귀를 상상하자.

 

루저가 깍두기가 되는 날,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도 살아나는 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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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을 참견하면서 삶을 발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