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한민국

울릉도 생태 여행 Part 4

August 15, 2016

정보 보기 삼나물. 수확철을 맞아 알이 굵게 오른 울릉홍감자. ⓒ 서송이

4. 산에서 나고 자란 채소를 느릿느릿 먹고 쉬자

“울릉도에서는 마음을 비워야 원하는 것을 얻어요. 마음 졸인다고 배가 뜨나?” 저동항에 도착한 첫날 애꿎은 날씨에 투덜대자 이소민 해설사가 말했다. 마음을 비운 덕분일까? 울릉도의 마지막 날, 나리분지 하늘은 눈부실 만큼 청명하고 높았다. 동서 1.5킬로미터, 남북 2킬로미터에 달하는 평지 분화구 안에는 선명한 초록의 밭이 빼곡하고, 밭을 둘러싼 봉우리까지 무엇에 걸리는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 속 분지 숲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이곳에서 자란 섬말나리를 비롯해 울릉홍감자, 토종옥수수, 섬엉겅퀴, 참고비, 두메부추, 삼나물, 명이나물, 부지갱이 등이 개척민의 든든한 먹거리가 되어주었다. 울릉도 토박이인 한귀숙 씨는 나리분지에 밭을 일구고 산채 음식을 내는 산마을식당을 운영한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슬로푸드협회의 회원으로, 울릉도 고유 종자 지킴이 역할을 한다.

홍감자철을 맞아 한귀숙 씨가 투막집 옆 홍감자밭으로 안내한다. 올해 첫 수확이다. “을매나 굵었나 봐야제. 어머나 여봐라, 크다. 이만큼 열매 맺어 참으로 고맙네. 애지중지 키웠제. 7월 중순 좀 지나면 더 굵제. 서리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흙이 양토라. 물 빠짐이 좋아요. 나뭇잎 피는 시기에 맞춰 파종했는데 잘됐네. 홍감자가 전분이 많고 맛이 참 좋아.” 그가 땅을 호미로 쓱쓱 밀어내자 흙이 곱게 부서지고 주먹만 한 붉은 감자가 튀어나온다. “어릴 때 요거 먹고 컸제. 밥 해먹고, 쪄 먹고, 인절미 해 먹어요. 여기 쌀이 귀하잖아. 푸른 감자는 싹이 날 때 가장 차지거든. 그때 껍질 벗겨놨다가 인절미 만들어 먹어. 소화도 잘돼요.” 울릉홍감자는 쌀을 대신해 끼니를 하던 토종 먹거리다. 알이 굵은 것도 있지만, 일반 감자에 비하면 크기가 작다. 울릉도 주민은 매년 5~6월경 울릉 홍감자로 전분을 만들어 저장해 두고 여러 음식을 만들때 쓴다.

홍감자만큼 생경한 것은 섬말나리다. 한귀숙 씨가 길고 굵은 섬말나리 줄기를 천천히 잡아 올린다. 생김새는 마늘과 흡사한데, 꽃잎처럼 뿌리껍질이 여러 갈래로 벗겨지고 양쪽 끝으로 난 뿌리가 마치 얼굴에 난 수염과 머리카락을 닮았다. “섬말나리 처음 봤지요? 우리 동네에 많이 나요. 먹을 것 없을 때 이거 먹고 연명했지. 지금은 하도 캐 먹어서 씨가 없어.” 멸종 위기에 놓인 섬말나리는 울릉도 고유 특산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성인봉 일대 해발 4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군락을 이루고 그늘진 숲의 경사면에 자란다. 그녀는 전통 음식을 복원하기 위해 섬말나리를 심는다. 어린순을 넣어 산채비빔밥을 요리하거나 두메부추와 범벅을 해 먹는다. ‘하늘의 파’라 불리는 두메부추는 성인봉이나 통구미 마을 절벽 등지에서 자란다. 일반 부추에 비해 칼륨과 칼슘 함유량이 높다. 그녀가 호미 대신 칼을 들어 두메부추 줄기를 친다. 굵고 널찍한 줄기를 자르니 투명한 진액이 나온다. “이거 좀 먹어보소. 꼭 알로에 같제.” 그녀의 말처럼 끈적끈적한 즙이 미니 알로에를 떠올리게 한다. 두메부추는 생채를 갈아 김치 양념으로 쓰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다.

나리분지에서는 울릉도에서만 나는 고유 나물이 들어간 산채비빔밥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한귀숙 씨가 운영하는 산마을식당에서 울릉 산채 정식을 먹어본다. 산채비빔밥과 함께 삼나물(눈개승마), 참고비(섬고사리), 취나물, 명이나물, 미역 등이 한상 가득 올라온다. 귀하고 건강한 자연 밥상이다. 특히 삼나물은 고기 식감과 비슷해 ‘고기 나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인삼처럼 사포닌이 풍부해 따로 음식으로 주문해야 할 만큼 값비싸다. 울릉도 먹거리는 해양성기후와 비옥한 토양이 만든 자연의 고마운 선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보약을 먹듯 느릿느릿 씹고 먹고 즐겨야 한다. 그 안에는 섬 토박이가 지켜온 진짜 울릉도가 있으니.

나리분지 054 790 6423, 울릉군 북면 나리길 598. 

산마을식당 산채비빔밥 1만 원, 산채 정식 2만 원, 삼나물회 2만 원, 054 791 4643, 울릉군 북면 나리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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