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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표 버섯명가의 경산 유기농 표고버섯 3천 년을 내려온 보약 같은 버섯, 표고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움막 대신 밝고 상쾌한 공간을 택한 김영표 씨. 한 번 먹는 약용 버섯보다 매일 먹는 표고버섯이 더 귀하기에 ‘죽기 전에 먹어야 할 101가지 표고버섯 요리’를 개발 중이라는 재미있는 버섯 농부다.


(왼쪽) 경상북도 경산에서 버섯 농장을 운영하는 김영표 씨 부부. 최근에는 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버섯 체험장 마련에도 몰두하고 있다.
(오르쪽) 고급 표고버섯으로 꼽히는 백화고. 품종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갓이 하얗게 피면 백화고가 된다. 인위적으로는 조절하기 어렵고 운이 좋아야 백화고의 비율이 높은데, 김영표 씨는 재배 노하우로 그 비율을 높인다고 한다.


버섯만큼 유행을 잘 타는 식품도 드물다.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불리는 버섯이 길어야 10년 주기로 나타나 열풍을 일으키는 것이다. 1970년대 말에 영지버섯으로 시작된 버섯 열풍은 아가리쿠스버섯, 동충하초, 상황버섯, 차가버섯, 꽃송이버섯 등으로 종류를 바꿔가며 지금도 여전하다.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나 그 가족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버섯 농장을 운영하는 김영표 씨도 버섯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좋다는 버섯을 모두 구해드리다가 아예 버섯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된 것. 하지만 귀하다는 약용 버섯이 아닌 흔하디흔한 표고버섯을 선택했다. 값도 싸고 새로울 것도 없는.

출판사 사장에서 버섯 농부로
15년 전, 운영하던 출판사를 접고 하루 24시간 아버지의 간병을 시작한 김영표 씨는 병원에서 수많은 ‘카더라’ 처방을 접했는데, 버섯의 효능에 관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고 한다. 온종일 붙어 있다 보면 눈치만 봐도 환자의 상태가 보이는 법. 버섯 달인 물을 꾸준히 드시는 동안 아버지의 짜증이 줄고 컨디션이 한결 나아지자 궁금증이 일었고, 전직 출판사 사장답게 버섯에 관한 책은 모조리 구해 읽었다. 그러고는 엉뚱하게도 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집 근처에 텃밭처럼 엉성한 비닐하우스 한 동을 세우고 시작한 농사였다. ‘직접 재배한 깨끗한 버섯을 드리면 약효가 조금이라도 더 있지 않을까’ 하는 효심의 발로였다. 예상보다 2년을 더 사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김영표 씨는 본격적인 버섯 농부가 되었다. 진지한 귀농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부잣집 아들의 철없는 객기였다. 20대에 대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그인지라 그럴 법도 했다. 생각 즉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주위의 만류, 아내의 눈물 앞에 결심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농사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자마자 포항 제철 공장으로 달려갔어요. 하우스를 지으려면 파이프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파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제철소니 당연히 현금을 주면 파이프를 살 수 있는 줄 알았죠. 정문에서 만난 경비원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막더군요. 파이프 사러 제철소에 찾아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요.”
벽인지, 문인지, 그도 아니면 담인지 일단 부딪쳐봐야 깨닫는 독특한 성격의 일면. 열세 살 무렵, 산에서 밥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애꿎은 친구들을 꾀어 솥단지 짊어지고 팔공산 꼭대기에 올라 기어이 밥을 해 먹고 내려온 이후로 생긴 ‘하면 된다’는 좌우명도 한몫을 했다. 대대로 물려 내려온 넓은 대추밭을 포크레인으로 갈아엎고 엉성한 비닐하우스를 짓는 동안 다섯 살배기 쌍둥이 엄마인 아내는 마냥 울었고, 동네 사람들은 ‘1년 안에 손 털고 나갈 것’이라며 내기들을 했더란다.
 

잘 자란 참나무를 베어 1년간 물을 주어 흠뻑 적시고 종균을 주입해 배양한다. 수시로 나무 기둥을 세웠다 뉘었다 하는 것도 고된 작업이다. 한번 수확하기 시작하면 족히 4년은 할 수 있다. 버섯이 돋아나면 겉잡을 수 없이 쑥쑥 자라는데 갓이 피어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수확하려면 정확히 사나흘 안에 버섯을 따야 한다.수확후 그 자리에서 먹는 버섯의 향은 하루 종일 입 안에 맴돈다.

생각을 바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
버섯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를 둘러보니 눈에 영 낯설다. 지금까지 보아온 버섯 농가와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흙밭에 통나무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서 있는 대신 하나같이 모두 옆으로 누웠다. 그것도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 안에 가지런히.
“버섯을 위한 아파트라고 보면 되죠. 원래 버섯 농사는 흙밭에 통나무를 세우고 구멍을 뚫은 다음 종균을 배양해 버섯을 키워내는데 통나무를 뉘어서 재배하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지 싶네요.”
비닐하우스 규모를 40동으로 늘려가며 15년간 농사에 매달리는 동안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한 끝에 개발해낸 아이디어란다. 버섯 농사는 참나무를 120cm 길이로 잘라 흠뻑 물을 주고 구멍을 뚫은 후 버섯 종균을 주입해 1년 정도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기간 동안 종균이 나무의 영양을 먹으며 균사를 퍼뜨리는 것이다. 본격적인 버섯 농사가 시작되면 뚫어놓은 구멍마다 버섯이 돋으면 따는데 4년 정도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버섯 재배 기간 중에도 물을 주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평소처럼 세워두면 수분이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에 버섯을 딴 후에는 통나무를 모두 쓰러뜨려 물을 흠뻑 준 다음 다시 일으켜 세운다. 버섯은 목질과 껍질 사이에서 생기는데 서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물을 줘도 수피를 타고 흘러내릴 뿐 효과가 적기 때문이다. 그 많은 통나무를 일일이 넘어뜨렸다 다시 세우는 일 역시 고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위생 문제. 통나무에 뚫어놓은 구멍에 흙이 묻으면 병원균이 옮을 우려가 있고 돋아나는 버섯에 흙이 묻어 있어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흙 속에 있는 벌레나 갑각류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버섯을 갉아먹으면 상품성도 떨어지게 마련. 버섯을 위한 아파트를 짓게 된 이유이며,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계기다.
재래 방식으로 버섯을 재배하는 하우스에도 흙 대신 작은 자갈로 만든 돌가루를 깔았다. 물을 흡수했다가 온도가 올라가고 빛이 강해지면 수분을 내놓는 돌의 특성을 살려 살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산소 농도가 높을수록 버섯의 때깔과 영양 상태가 좋아지는 까닭에 하우스 역시 높이 지어 공간을 확보하고 차광막과 비닐막이 열리는 구조를 택해 버섯을 딴 후에는 공기와 햇빛이 순환하도록 했다. 고급 표고버섯을 말할 때 흔히 백화고나 흑화고라는 명칭을 쓴다. 명절 선물 세트에서도 단연 고가로 팔리는 제품인데 백화고를 한 수 위로 친다. 특이한 것은 품종이 다른 것이 아니고 갓이 하얗게 피면 백화고요, 갓이 검게 피면 흑화고라는 것.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야 백화고의 비율이 높은데, 김영표 씨는 재배 노하우로 그 비율을 높인다.


(왼쪽) 3년 이상 숙성된 오미자 효소와 식초를 넣은 초고추장에 무쳐낸 표고버섯 비빔국수. 초고추장 역시 냉장고에서 8개월 이상 숙성시킨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는 초고추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깊은 맛이 살아 있다.
(오른쪽) 표고버섯과 파프리카, 무순 등을 넣어 만든 무쌈. 상큼한 초절임 무와 아삭아삭한 채소, 버섯의 향기가 어우러진 별미다.


표고버섯을 이용한 요리를 한 상 잘 차렸다. 짭조름하게 조려서 새콤한 밥 위에 얹은 초밥과 잘게 썰어 뭉친 주먹밥에 새콤달콤한 소스로 맛을 낸 비빔국수, 버섯 탕수와 잡채, 버섯 강정도 입에 붙는다. 새콤달콤한 맛은 오미자 효소와 오래 묵힌 식초로 냈다. 표고버섯 자체가 천연 조미료인 까닭에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깊은 맛이 난다. 1백 일 발효시켜 거르고 몇 년이나 묵혀 마신다는 표고주도 향기롭다. 김영표 씨는 표고버섯을 공판장에 내지 않는다. 싼값에 넘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생표고버섯은 온라인 주문을 통해 팔고 대부분은 말리거나 표고 정과, 분말, 음료 등으로 가공해서 판매한다. 올 한 해 농사는 거의 짓지 않다시피 하며 버섯 체험장도 멋지게 단장했다. 길이만 100m가 넘는 넓은 실내 공간을 식당과 음악회를 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몄다. 민화를 모티프로 한 그림과 도자기 등을 전시한 갤러리도 만들었다. 농장을 찾는 체험객을 위한 것. 버섯 드로잉이 인쇄된 엽서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을 칠하도록 하거나 농장의 로고를 새긴 편지지를 나눠주고 편지를 쓰게 한 후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원하는 곳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한다. 버섯 모양 양초와 목각 인형, 저금통 등도 제작해 기념품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가 스스로 찾아와 버섯의 생태를 관찰하고 버섯 요리를 먹고 재미있는 체험을 할수 있도록 멋진 버섯 테마 농장을 만든 것이다. 표고버섯 재배로는 국내 1호로 유기농 인증을 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버섯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연구하는 농부. 김영표 씨는 상황버섯이나 꽃송이버섯 등의 약용 버섯도 재배하지만 농장을 찾는 손님에게 굳이 비싼 버섯을 달여 먹을 것이 아니라, 값싼 표고버섯을 매일 먹으라 권한다. 갓 딴 표고버섯을 툭툭 털어 그 자리에서 생으로 먹으면 하루 종일 입안에 버섯 향이 감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향기로움을 올가을, 김영표 버섯명가에서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위) 표고버섯 슬라이스와 분말로 구성한 선물 세트.

‘건강의 고향을 찾아서’는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이며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재직 중인 농업경제학자 민승규 박사와 함께 기획・구성한 건강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