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구가도시건축이 한옥부분을 설계한 롯데부여리조트가 한겨례 신문에 실렸습니다.

 

뭐냐, 저 이상한 말발굽 건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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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부여의 옛 이름입니다. 찬란했던 백제의 서울이었던 부여는 그러나 지금은 백제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백제가 워낙 옛 나라다 보니 당시의 건물이나 유적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부여는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 크게 내세울 볼거리가 적은 도시입니다. 한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건축적으로도 주목할 작품이 들어서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모처럼 이 부여에 눈길 끄는 작품이 새로 생겼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문을 연 롯데부여리조트 건물입니다. 지난 11월 이곳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진가인 김재경 선생님의 깔끔하고 시원한 사진을 중심으로 보시겠습니다. 보시면 바로 알겠지만 멋있는 사진은 김재경 선생 것, 후진 사진들이 제겁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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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물은 큰 활처럼 휘어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부채꼴처럼 원을 그리는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렇게 원을 그리는 모양의 건물은 많지는 않아도 드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동안 한국 건물들, 특히 콘도 건물들에서 보지 못했던 여러 새로운 점들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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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전망 좋고 빛 잘 드는 남쪽은 객실들이 배치되고 그 뒤쪽은 복도가 배치되었습니다. 그래서 뒤쪽이 심심하기 쉬운데, 오히려 정 반대로 건물 뒤쪽이 더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그리고 건물 바로 앞에는 동그란 모양의 웒ㅇ 회랑 한옥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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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 말려 있는 건물벽도 무척 색상이 다채롭습니다. 어떻게 생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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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깔의 컬러 루버를 벽에 장식으로 붙였습니다. 루버는 색깔로 포인트를 주는 동시에, 그림자로 건물 표면에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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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중간에 갑자기 한옥 하나가 콕 박혀 있습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건축양식이 충돌하고 연결됩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김승회 서울대 건축과 교수입니다. 김승회 서울대 교수와 강원필 경영위치(건축설계사무소 이름) 대표의 공동 작품입니다.

 김 교수와 강 대표는 15년 넘게 경영위치란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며 모든 작품을 공동으로 설계해왔습니다. 한 건물을 건축가 두 명이 함께 설계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 두 사람처럼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해오는 건축가 콤비는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건축계의 소문난 듀오입니다.

 이 건물이 건축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콘도건축이 재미있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콘도건축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크고 웅장하긴 해도 그 모양새가 다 엇비슷했던 것은 서양식 느낌 물씬 풍기게 기둥 장식 넣거나 각종 유럽풍 장식으로 꾸며 마치 예식장들이 화려해도 다 비슷한 짝퉁 서양건물 이미지인 것들처럼 오히려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호텔 건축과 예식장 건축의 그 중간 어디쯤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는 표피만 강조하는 키치적인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건물은 무지하게 컸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방을 길게 늘어 세워 건물 복도가 한없이 긴, 그러면서도 내부는 기숙사 같은 또는 크게 뻥튀기한 아파트 같은 단조로운 곳이 많았습니다.

 이 건물은 그런 관습적이고 볼썽사나운 장식에만 치장하는 한국 상업 건물들 특유의 유치한 강박관념을 어느 정도 떨쳐냈고, 색상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색감이 풍성하지 못한 다른 콘도들보다 훨씬 경쾌하면서도 눈길을 확 붙잡습니다. 그동안 콘도건축은 국내 유명 건축가들보다는 비슷한 디자인을 찍어내는 공장식 설계법인이나 시공회사 디자인팀들의 빤한 설계 일색이었는데, 이렇게 유명한 건축가를 기용한 점도 도드라집니다. 두 건축가는 설계현상경기에서 당선되어 이 건물을 디자인했습니다. 기존 콘도건축들의 아쉬움을 극복한 것은 이렇게 전문가에게 설계를 맡긴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콘도처럼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또 화려한 볼거리가 필요한 대형건물을 국내 유명건축가들이 오히려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게 지금 우리 건축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동안에는 설계 단가를 싸게 해서 빨리 짓는 것들이 우선이었고, 또 건설을 맡은 시공업체들이 설계를 자체 설계팀에서 해서 싸게 해준다는 논리로 공사를 수주하는 관행이 일반적이어서 건축적으로 주목받는 콘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관심거리이자 이 건물이 담고 있는 이슈는 우리 건축계의 오랜 논쟁거리이자 영원한 주제인 `전통과 현대의 조화‘, 또는 `전통의 현대화’란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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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도 건물은 옛 백제를 재현한 부여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있습니다. 전통 건축물 재현 단지 앞에 있으니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중간에 박혀있는 한옥 전망대도 그런 의무적인 해결 과제의 산물입니다.

 그동안 우리 현대건축에서 전통의 접목은 건축가들에겐 지긋지긋하고 정말 냉소받는 주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콘크리트 건물에 무조건 기와지붕 올리면 된다는 박정희 시대의 마인드를 지금껏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얹거나, 기둥이나 처마를 한옥처럼 재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문제는 이 한 가지 방법만 줄기차게, 건축의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이나 시장 등이 건축에 반영하도록 멋대로 지시하는 관행이라고 하겠습니다.
 한옥 기와지붕을 얹지 않아도 ‘한국인의 춤사위를 표현한 건물’, ‘한국의 갓과 부채를 형상화한 건물’처럼 한국적인 어떤 이미지를 꼭 집어넣어야만 전통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엇비슷한 건물만 양산할 수밖에 없겠죠.

 한옥 양식이나 디자인이 필요한 건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것과 특별히 상관없는 건물들에도 이런 요구들이 많았고, 그 결과 우리 공공건축에서 이런 전통양식을 접목시킨 건물들 가운데 국내외 건축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건물은 정작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양복입고 갓 쓴 꼴’인 유치한 건물들만 만들었다는 후대의 냉소와 비판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의 접목을 피해갈 수는 없는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이 들어선 곳이 백제 시절 건물들을 재현해 최근 문을 연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백제문화단지 옆이라고 해서 전통미를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현대적 건물이 대비를 이룰 때 한옥은 한옥대로, 현대건물은 현대건물대로 더 대비되며 도드라질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백제 건축의 전통미를 지금 구현하고 싶어도 당시 백제의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옛 백제 건물은 단 한 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후 고려시대 건물들과 비슷하리라고 추정할 수는 있어도 실제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건축이란 비슷해보여도 시대에 따라 변화가 많습니다. 고려의 건물과 조선의 건물은 얼핏 보면 닮아보일 수 있지만 그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 백제 건축은 상상속의 어떤 이미지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메인 디자인을 맡은 김승회 교수는 백제를 ‘재현’하기보다는 ‘상상’하는 방법을 골랐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면 백제란 나라의 문화는 어떠했을까요? 백제 건축이 풍겼을 그 느낌은 어땠을까요? 그건 아주 조금 남아있는 백제 문화재들이 담고 있는 특성이나 느낌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백제 문화재들에서 느끼는 백제 문화의 특성은 바로 유려함, 그리고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유려한데도 에너지가 넘치는 부드러운 힘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느낌을 지금 현대건축으로, 현대인의 삶을 담는 현대건축물이니 백제의 느낌을 전해지지 않는 백제의 양식으로 재현하지 말고 새롭게 상상해 표현하자는 것이 저 콘도건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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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저 색상이 다양한 말발굽 모양 본관 건물 못잖게 건물 입구에 만들어놓은 저 동그란 한옥 회랑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원을 이루는 동양식 목구조 건물은, 뜻밖에도 이 건물이 세계 최초입니다. 중국의 토루 같은 원형 건물이 있긴 하지만 회랑으로 이렇게 원을 만든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실제 백제에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런 건물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즐겁게 제안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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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형회랑은 김승회씨가 콘셉트를 디자인하고 호텔 라궁 등 현대 건축물을 한옥으로 하기로 유명한 조정구 구가건축 대표가 실시설계를 한 건물입니다.

 건축가의 노림수는 또 한 가지 더 숨어 있습니다. 아직도 문화유적 근처에 들어서는 건물은 그래도 한옥지붕을 올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 건축가들은 이런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지 기존 관행을 복사하듯 되풀이하고 싶어하는 작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건물은 이렇게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 회랑을 건물 앞에 배치함으로써 전통과 현대를 구분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덕분에 콘도건물 자체는 아주 현대적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랑은 공간 구성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합니다. 단순히 전통을 상징하는 이미지 장식같은 건물이 아니라, 중요한 기능을 하는 쓸모있는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저 동그란 회랑은 콘도를 방문한 차량이 로비에 사람을 내려주고 돌아나가는 원형 회전로(라운드어바웃) 역할을 합니다. 일반 건물에선 동그란 분수대나 원형 정원으로 꾸며놓는데 아예 한옥 건물로 만든 것이죠. 그러면서 그 가운데 빈 공간은 평소에는 정원이면서 콘도에서 행사를 벌일 때는 이벤트장으로 쓰는 공공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콘도 건물 자체의 디자인과 공간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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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건물은 상당히 거대합니다. 엄청난 덩치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건물을 보면 그리 둔중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행했던 최욱 건축가는 “이 건물은 덩어리가 아니라 선으로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과감한 곡선으로 건물의 무게감을 줄이고 시각적으로 가볍게 느끼도록 연출했다는 평입니다. 이 곡선은 윗 사진으로 보면 알맞게 휘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 그 각도는 상당합니다. 이렇게 강하게 커브를 도는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래에서 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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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진가 한 바나나 정도의 곡선일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꼭 말발굽처럼 크게 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신 분들은 바로 이 건물을 떠올리실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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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독일 건축가 마르틴 바그너와 브루노 타우트가 베를린에 만든 `말편자 집합주택’. 근대 도시에 걸맞게 열악한 노동자들의 주택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건축물로, 독일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유산이다.

 이렇게 원형 디자인으로 한 것은 건축가의 여러 고민과 아이디어의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건물 덩치가 상당한데 원형이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은 상부로 향하게 됩니다. 상부는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과 원형 건물이 맞닿는 이 모양이 건물을 덩어리가 아니라 선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 선이 건물을 가볍게 보이게 합니다.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와 비슷한 시각적 원리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동그랗게 안는 동시에 땅도 동그랗게 감싸 안습니다. 그래서 마당의 느낌이 다른 콘도와 크게 달라집니다. 건물 외부 공간의 연출에서 색달라지는 것이겠죠.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보통 콘도들은 건물 자체와 내부는 한껏 꾸며도 외부 공간은 무척 심심했습니다. 이 콘도는 마당과 길, 이어지는 동선 등 외부가 풍성합니다. 그런 연출을 위해서도 저 곡선 디자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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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말발굽 두 개가 공간을 나누고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중정 같은 공간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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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부분 중의 하나는 사실 `입구‘입니다. 기존 콘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입구입니다. 호텔의 경우 로비를 화려하게 꾸며 볼거리가 많은 편이지만 콘도들은 아파트나 주상복합공간 1층 홀처럼 평이하고 대동소이하게 처리해 특징이 적고 어수선한 공간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 콘도는 입구에 들어서면 장식이나 인테리어에서 크게 화려하진 않지만 원형 공간 안 중앙 정원이 바로 눈에 들어오면서 아늑한 공간감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콘도는 콘도 건물만 화려하고 바깥은 썰렁해 볼거리가 없는데 건물을 두 개로 분리하고 공간을 잘게 쪼개고, 한옥회랑 등의 볼거리를 외부에 놓아 안에서 바깥을 볼 때도 심심치 않은 것입니다.

 아쉽게도 제 후진 사진뿐이어서 도저히 보여드리지 못하네요. 죄송…. ㅠㅠ 사실 건축가에겐 외부의 디자인보다 오히려 건물과 건물의 관계, 건물과 주변의 관계, 그리고 외부 공공공간의 구성과 변화 같은 것들, 그리고 일반 콘도와 다른 내부의 편복도 처리 같은 부분들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건물은 결국 디자인 자체보다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적인 측면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이용자들과 거주자들에게 오랫동안 더 큰 영향을 미치며 건물에서 받는 느낌을 만들어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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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다 비슷해 보입니다. 다른 점은 아주 사소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달라지고, 느낌이 달라지고, 거기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콘도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생활 속의 레저, 여가 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좋은 건축물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이 롯데리조트 콘도가 최고의 건물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이제 콘도건축이 조금씩 새로워지고 보기 좋아지려는 흐름의 신호탄으로 생각하면 반가운 건물입니다. 상업건물이라도 사람들과 가장 친숙한 건물들이 건축적으로 의미를 담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변화라 하겠습니다. 한국 콘도건축, 과연 더 재미있어질까요? 그래야겠죠?

 

글 / 구본준 기자, 사진 / 김재경 건축전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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