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스테르담 다락방 25개월간 숨어 살던 안네 가족을 나치에 밀고한 범인 찾아라
▶ 전 FBI 요원·AI 개발자 등 20여명 도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 하우스’(왼쪽에서 두 번째). 매년 130만 명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
안네 프랭크와 언니 마고의 무덤.
2차 대전 중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버지 회사 창고의 비밀 별채에서 나치 경찰을 피해 숨어 살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랭크는 어느 날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인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던 그 낮은 소리는 안네를 두러움에 떨게 했다.
그날의 공포는 얼마 안가 현실로 나타났다 : 몇 달 후인 1944년 8월4일, 움직이는 책장 뒤 쪽에 감추어져 있던 이들의 은신처로 들이닥친 경찰은 안네를 비롯한 8명을 체포했다.
그들은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고, 나치정권의 유대인 탄압을 전 세계에 생생히 고발한 ‘안네의 일기’를 남긴 안네 프랑크 일가족은 아버지 오토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곳에서 숨졌다.
누가 그들을 밀고했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거의 75년이 흐른 지금, 은퇴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이끄는 새로운 조사팀이 현대 과학수사 기법과 범죄학을 도입해 세계사의 가장 유명한 미 해결사건(cold case) 중 하나인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우린 새로운 단서에 특히 역점을 둘 것”이라고 전 FBI 요원 빈스 팬코크(59)는 말했다. “모든 제보 스토리들을 확인하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사가 진전될 것이다”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그의 팀은 워싱턴과 네덜란드, 독일과 이스라엘의 기록보관서에서 입수한 수백만 쪽의 자료들을 디지털 방식으로 샅샅이 훑고 있다.
법의학 회계, 크라우드 소싱, 행동과학과 증언 재구성 같은 다른 현대 기법 사용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팀은 안네의 집을 3차원 스캔하여 컴퓨터 모델을 사용해 소리가 얼마나 멀리 퍼지는가를 확인하고 있다.
이런 기법이 ‘안네의 일기’에 묘사된 벽 두드리는 소리가 숨어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알려주려는 것이었는지, 함정이었는지를 재평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적이고 값이 비싼 테크닉은 1948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수사했으나 해결하지 못 했던 네덜란드 국립경찰에겐 가능하지 못했던 기법이다.
안네가 숨어 살았던 2년의 생활에 대해선 그녀가 남긴 일기와 전쟁이 끝난 후 출판된 조력자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44년 8월4일의 기습 체포 정황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날의 기습으로 프린센그라트 거리 다락방에서의 안네의 생활은 끝이 났고 그 후 베르겐-벨센 집단수용소에서의 길고 고통스런 여정이 시작되었다. 안네는 이곳에서 1945년 2월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5세에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숨진 안네 프랭크.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10만8,000명의 유대인이 추방되었는데 후에 돌아온 사람들은 5,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나치의 흔적이 강했던 이곳에서 안네 프랭크 밀고자에 대한 재조사 착수는 전국적 화제가 되고 있다.
“안네는 우리가 보호했던 소녀인데 이젠 우리가 배신한 소녀가 되었다”고 라이덴 대학 강사로 나치 점령 관련 전문가인 바르트 반 데르 붐은 말했다. “이것이 나치 점령기에 자신들의 역할이었다고 네덜란드 인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시각이다”
네덜란드 인들이 자신들도 나치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인식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고 반 데르 붐 박사는 설명한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뮤지엄의 전시물들은 당시 나치의 협력자, 저항자 및 희생자, 그리고 중립을 지켰던 사람들의 삶을 제각기 조명하고 있다.
“우린 그 운명의 날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보통 밀고자들은 제복을 입은 죽음의 사자 같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로널드 레오폴드 안네 프랑크 하우스 재단의 사무국장은 말한다.
안네 프랑크의 삶에서 밀고자의 모습은 중요하다. 그녀의 죽음에 직접 책임이 있는 경찰이나 군인들과 달리 밀고자는 프랑크 일가와 안면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1945년 여름 네덜란드로 돌아온 오토 프랑크는 누군가 밀고했을 것으로 확신했고 종전 후 배신자를 찾기 위한 수사를 의뢰했다.
60여개국 언어로 번역된 ‘안네의 일기’는 아버지가 이들 가족의 은신처에서 후에 발견된 딸의 일기장을 ‘The Diary of a Young Girl’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밀고 혐의자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창고에서 일했던 빌헤름 반 마렌은 두 차례 네덜란드 경찰 수사에서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당시 수사에서 무죄로 드러났다. 새 조사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데 배신에 의한 지인의 밀고가 아닌 우연한 적발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새 조사팀은 전 FBI요원, 역사가, 인공지능(AI) 개발자, 행동과학자, 전직 형사 등 20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안네가 체포된 지 만 75년이 되는 2019년 8월4일까지 수사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팬코크는 이번 재조사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을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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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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