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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쪽박새’ 울 때면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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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t : 9916, Date : 2015/07/01 00:00

  세계적으로는 139종, 우리나라에는 6종(매사촌ㆍ검은등뻐꾸기ㆍ뻐꾸기ㆍ벙어리뻐꾸기ㆍ밤색날개뻐꾸기ㆍ두견이)이 관찰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된 두견이목(目), 두견이과(科) 새들은, 가늘고 긴 꼬리와 뾰족한 날개, 끝이 굽은 부리를 지녔으며, 독립생활 하는 새로, 절반 정도가 자기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탁란(托卵)을 하는 것이 특징으로, 둥지 주인의 알보다 일찍 부화(孵化)해, 둥지 안 숙주(宿主)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이기도 합니다. 이들 두견이과 새들은 두견이와 검은등뻐꾸기처럼 외형이 너무나 닮아서 저마다의 울음소리로 종(種)을 구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는 이름이나 별명이 많으며 겹치기도 합니다. 

  숲의 색깔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갈 즈음, 여름이 찾아왔음을 알리듯 숲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우는 새가 두견이와 검은등뻐꾸기입니다. ‘쪽박새’는 ‘두견(杜鵑)이’, ‘검은등뻐꾸기’의 별명이거나 지방에 따라 부르는 향명(鄕名)입니다. ‘홀딱 벗고 새’라는 이름을 붙인 이도 있습니다. 뻐꾸기나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듣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달라서 생긴 별칭들입니다. 두견이 등의 우는 소리가 전설 속에서는 “쪽박 바꿔 주, 쪽박 바꿔 주”이고, 앞산 뒷산에서 문답하듯 “카, 카, 카, 코-, 카, 카, 카, 코-” 운다, 네 마디소리 중 셋은 같다가 마지막 하나는 뚝 떨어진다. 음계로 치면 미ㆍ미ㆍ미ㆍ도 쯤으로, 뻐꾸기 소리보다 조금 낮아 더 울림이 있다.”고 규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이우신, <한국의 새>, LG상록재단, 2000). 또 어떤 사람은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었다고도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수필가 원성 스님은 이 새들의 울음소리를 ‘공부는 안 하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떠난 중이 환생한 전설의 새’라면서,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모두 벗어버리고 열심히 공부해 성불하라.”는 소리라 했습니다. 두견이 등의 울음에는 “소쩍 소쩍”, “뻐꾹 뻐꾹” 같은 의성어가 따로 없어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첫차 타고 막차 타고’, ‘언짢다고 괜찮다고’, ‘혼자 살 꼬 둘이 살 꼬’, ‘작작 먹어 그만 먹어’, ‘머리 깎고 빡빡 깍고’… 같은 재미있는 우스개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새들의 지저귐이 ‘우는 것이냐?’, ‘노래하는 것이냐?’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락하는 신호, 즉 새들의 언어일 뿐이지만, 새들의 지저귐을 표현하는 데는 동ㆍ서양의 차가 현격합니다. 우리는 흔히 ‘운다[鳴].’고 하는데 반해 서양 사람들은 ‘노래한다(singing).’고 합니다. 우리는 반세기 전만해도 해마다 지긋지긋한 ‘보릿고개’, 궁핍한 절량기(絶糧期)를 겪었습니다. ‘석 달을 세 끼 밥으로 때운다.’는 중국식 과장된 표현, ‘구순삼식(九旬三食)’하는 사람들에게 새들의 지저귐이 노래로 들렸을 리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굶어죽은 며느리의 혼(魂)이 새가 그 한(恨)으로 피를 토하며 운다느니, 그가 토한 핏자국에서 진달래꽃이 피어났다느니 하는 슬픈 사연의 전설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옛날 밥을 짓는 며느리에게 끼니때마다 작은 바가지로 쌀을 조금 퍼주고는 지은 밥을 다 어떻게 했느냐며 구박하던 시어머니 때문에, 끼니를 굶어 쇠약해진 며느리가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며느리의 넋이 새가 되어 야박한 시어머니를 원망하며 “쪽박 바꿔 주, 쪽박 바꿔 주.” 하며 그악스럽게 운다는 것이 두견이(쪽박새) 전설입니다.

  뻐꾸기가 울 때면 보리가 여물어 거둘 때가 가까워지며, 모든 산야가 짙은 녹음을 향해 치닫는데, 유독 보리밭만은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맥추(麥秋)의 계절 ‘보리 누럼’을 연출합니다. 옛 민초(民草)들의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드디어 넘었다는 기쁨의 노래가 들렸을 법 합니다. 그래서인지 농부들은 뻐꾸기를 ‘보리새’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 민요 ‘옹헤야’는 경상도 지방에서 망종(芒種) 무렵 도리깨로 보리를 타작할 때 부르던 노동요(謠)입니다. 농부들이 두 패로 나뉘어 신명나는 자진모리 앞소리를 메기면 뒷소리로 다른 패가 되받는 구성진 가락에 장단을 맞추어 도리깨를 내려칩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옹헤야’의 후렴 앞소리 ‘어절 씨고’를 빼닮았습니다. 새가 ‘어절 씨고’ 하면 농부들은 그에 맞춰 ‘옹헤야’라고 뒷소리를 받쳐줍니다. ‘잘도 하면’, 또 ‘옹헤야’ 하고 이어 갑니다. ‘저절 씨고 옹헤야, 잘도 논다 옹헤야…’ 흥을 돋우는 가운데 봄날이 가고 여름이 찾아옵니다.

  뻐꾸기, 두견이를 소재로 한 서정주 시인의 ‘보릿고개’와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두견이의 또 다른 이름)’ 두 편의 시를 읽어 봅니다.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수정 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어느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단오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가시라기를 비비는데…….// 뻐꾹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히 배는데…….”

-서정주, ‘보릿고개’ 전문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 ‘접동새’ 전문

임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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