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챙겨다니는 남자

입력 : 2012.02.28 23:29

천으로 집 짓는 미술가 서도호, 3월 22일부터 리움에서 개인전
살던 한옥·아파트 그대로 본떠 이사 때마다 접어 갖고 다녀
"서울·뉴욕·런던 오가는 나… 유목민에겐 집도 떠돌이죠"

이 남자는, 천으로 집을 짓는다. 이사를 할 때마다 제가 살던 집의 형태를 투명하고 얇은 천으로 고스란히 본떠 슈트케이스에 차곡차곡 개켜 넣어 챙긴다. 정든 공간에 대한 지독한 애착, 혹은 향수(鄕愁)의 과잉처럼 보이는 이 행위에 대해 정작 그는 '쿨'하게 말한다. "그리운 공간으로 못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질질 짜느니 차라리 '내가 그 공간을 가지고 가 버리겠다'고 결심한 셈이랄까."

서울, 뉴욕,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50)가 3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인전 'Home within Home(집 속의 집)'을 연다. 작품 30여 점이 나오는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서도호가 해온 '집' 작업의 총체. 국내 생존작가가 리움에서 개인전을 갖는 것은 2004년 개관 이래 서도호가 처음이다.

서도호는 자신이 10~20대를 보낸 서울 성북동 한옥의 요소 요소를 작품으로 구현했다. 사진은 한옥 북벽(北壁)만을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재현한 2005년작‘북쪽 벽’. /ⓒDo Ho Suh
서도호는 자신이 10~20대를 보낸 서울 성북동 한옥의 요소 요소를 작품으로 구현했다. 사진은 한옥 북벽(北壁)만을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재현한 2005년작‘북쪽 벽’. /ⓒDo Ho Suh
서도호는 전시에서 청색 은조사(銀造紗)를 재단해 만든 한옥 '서울 집/서울 집'을 선보인다. 서까래, 기둥, 창살, 기왓장 등 한옥의 건축적 요소를 일일이 바느질해 만든 작품은 가로 14m, 세로 7m, 높이 4m. 1974년 작가의 부친인 산정(山丁) 서세옥(83) 화백(서울대 명예교수)이 창덕궁 연경당(演慶堂) 사랑채를 본떠 지은 서울 성북동 한옥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바닥에서 2m 이상 떨어진 허공에 매달릴 이 작품은 신기루처럼 뿌옇게 일렁이며 관람객들 저마다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집'의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1991년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겐 서울 '집(home)'과는 너무나 다른 또 하나의 '집'이 생겼죠. 그 둘을 비교하면서 과연 '집'이란 것의 실체는 뭘까, 줄곧 생각했어요." 서도호는 1999년 미국 LA 한국문화원 전시에 천으로 만든 한옥 '서울 집/L.A 집'을 내놓으며 '집'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천을 사용한 것은 '쉽게 옮겨다니고 옷처럼 언제든 벗어버릴 수 있는 곳'으로서의 집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홈(home)'이란 개인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시회 때문에 떠돌아다니는 제겐 사실 '집'의 개념이 애매해요. 'Home is everywhere and nowhere(모든 곳이 내 집이면서 그 어느 곳도 내 집이 아니다)'랄까." '집'이 '기억의 공간'이라면, 그 기억을 안고 떠돌아다니는 유목민형 작가의 집도 당연히 '떠돌이'여야 한다는 발상이다.

“옷에 관심이 많아 유학 시절 의상학과 수업을 들었다”는 서도호.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의 '한옥'은 이후 볼티모어, 런던, 시애틀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됐지만, 정작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진 두 채의 한옥 중 어린 시절 자신과 동생이 기거했던 작은 한옥을 모델로 작업했지만, 이번 '서울집/서울집'은 부모님이 거주했던 큰 한옥을 본떴다. 이 밖에 뉴욕 아파트 등 지금까지 1년 이상 살았던 집 5채를 형상화한 작품이 전시에 나온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한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뉴욕 리만 머핀 갤러리,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등 전 세계 유명 전시장을 누벼왔다. 그의 '집' 작업은 뉴욕타임스로부터 "세속적인 것과 기적적인 것의 놀라운 조합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한국 화단의 거목(巨木). '미술계의 엄친아'라고 불리는 이 작가는 "뉴욕 미술계가 아버지가 한국서 유명한 화가고,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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